인터뷰
[사람in] 프리 라이젠 “예술은 기쁨위해 존재하는 것 아냐”
亞문화전당 예술극장 ‘아워 마스터’ 기획한 ‘공연계 대모’
  • 김나볏 기자
  • 15.07.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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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대모’로 불리는 프리 라이젠(Frie Leysen)

차세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공연양식의 새 흐름을 탐색하며 세계 공연예술계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벨기에 출신의 공연기획자 프리 라이젠(65)이 내한했다.

 

프리 라이젠은 1980년 벨기에 안트베르펜 데 싱겔 극장을 창립한 이후 브뤼셀 쿤스텐 아트페스티벌, 중동 미팅 포인츠, 베를린 페스티벌, 빈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2014년에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를 기념해 유럽 문화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되는 에라스무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프리 라이젠은 서구 중심의 예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의 동시대 예술을 발굴해내며 주목을 끌고 있다. 2012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예술감독을 맡다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바 있다. 현재는 김성희 현 예술감독과 함께 아시아예술극장의 비전 설정과 프로그램 구성 등을 주도 중이다.

 

한편, 오는 9월4일 개관을 앞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직무대리 김성일)의 내부 5개원 중 하나인 예술극장의 첫 시즌 프로그램은 ‘아워 마스터(Our Masters)’와 ‘아시아 윈도우(Asia Window)’로 구성되며, 프리 라이젠은 ‘아워 마스터’의 큐레이터로 참여한다.

 

 

<다음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프리 라이젠과의 일문일답>

 

-어떤 계기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의 프로그램인 ‘아워마스터’에 참여하게 됐는지?

먼저 광주에 이런 프로젝트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고, 그때 ‘아시아에서 드디어 최초로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아시아 예술에 초점을 맞추는구나’ 싶었다. 아시아 예술이자 아시아 동시대 예술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사실 아시아가 너무 서구중심적인 사고 아래 서구의 기준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했다. 서구 작품을 모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광주의 역사를 듣고 나서 오만함이 아닌 건강한 쇼비니즘(chauvinism)으로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적인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의 역사, 철학을 돌아보면 이런 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철학에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 나한테 적시에 주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각종 공연축제를 주도해왔다. 각 시대마다 기획자로서 관심사가 달라졌을 것 같은데.

시간에 따라 관심사가 이동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극단적인 시도들을 더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 것 같다.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아무런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작품들, 감동을 주지 않는 작품들, 이 세계와 닿아있지 않은 작품들을 만나면 좀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세계 각국을 돌아보게 됐는데 아랍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더라. 여전히 서구적 심미안이 엿보이긴 했지만 아랍의 기준은 무엇이고, 아랍의 예술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깊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말로 서구라는 가장 상위에 있는 예술적 견해가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견해가 각각을 지배하고 있는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각각의 견해들이 우리가 만들어나가고 찾아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빈 축제 예술감독을 맡다 9개월만에 사임하기도 했다. 이유는 무엇이었나?

굉장히 화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예술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중심에 있는 게 내겐 중요하다. 돈이나 권력, 예술감독의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예술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축제를조직하고 예술가들을 지원할 뿐이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은 극단적으로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축제를 기획할 때 부딪히게 되는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 한다면 축제가 하나의 행사, 이벤트화 되는 것이다. 관객의 입맛에 맞춰 티켓을 팔아야 하고, 정치권의 입맛에도 맞게끔 해서 후원을 받아야 하고, 언론들도 기뻐해야 하고, 동료들도 기쁘게 해야 하는 등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예술이 되는 경우가 나를 가장 어렵게 한다.

 

그러나 예술은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은 사회의 어두운 병폐를 지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지 못하더라도 사회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화가 무엇이고 엔터테인먼트가 무엇인가 하는, 경계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예술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질문을 던지고, 기존에 존재하는 우리의 선입견에 질문을 던지고, 이를 수정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고해보도록 하는 게 예술이다. 엔터테인먼트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술이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한 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먼저 극장에 왔을 때 ‘정말 이게 아시아이기에 가능하구나’ 싶었다. 왜냐면 유럽에서는 더 이상 예술계에서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거나 새로운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다. 새로운 건축물에서 아시아 동시대 예술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수립해나가려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시대 예술이 시대와 사회를 담는 예술이라고 한다면 현재 동시대 광주의 모습을 프로그램에 반영할 생각은 혹시 없는지?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장소라는 배경이 있는데.

그 점에 대해 굉장히 많이 논의했다.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중한 의미가 녹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고 그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우리 시즌 프로그램이나 페스티벌의 정책을 보면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지역의 사건을 다루는 대신 간접적인 방식으로 장소의 역사성을 반영하고자 한다.

 

인간의 행동이 품고 있는 더 큰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하다. 관용이나 혁명, 저항정신 등에 대해 문을 활짝 열어서 이곳을 하나의 추모의 장소, 사고의 장소로 만들고자 한다. 이 가치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면 이 장소의 의미와 여기서 벌어졌던 사건을 기리는 방식이 만들어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에 이런 가치들이 포함되겠지만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나는 예술에도 이런 가치들이 포함될 것이다.

 

-주목하는 한국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연극을 비롯해 다양한 아시아 작품들로부터 감동 받았다. 한국에서 지평을 더 넓혀 얘기하자면 아시아 예술에 항상 깊은 관심이 있었다. 특히 부토에 감명을 받아 토시키 오카다를 비롯한 많은 일본 작가들을 추천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작품들을 끊임 없이 발견해나가는 작업은 아주 즐거운 작업이다.

 

동시대 예술이나 퍼포먼스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런 작업을 하는 젊은 세대를 양성해나가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젊은 세대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예술가도 한국에서 끊임없이 발굴해나갈 예정이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국적 때문에 그러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좋은 작업이 여기 많이 있기 때문이다.

 

 

원문: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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