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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거리공연 중인 김철민(좌)씨와 윤효상씨.(사진=정찬대 기자) |
문화와 공연의 거리 그리고 젊음과 낭만의 거리 대학로(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주말이면 어김없이 기타 줄을 튕기며 쉰 목소리의 괴성(?)을 지르는 윤효상(48)씨가 있다.
뜨거운 땡볕에 온 몸이 무기력해 지는 여름철에도, 매서운 칼바람에 기타 치는 손가락이 무감각해지는 겨울철에도 그의 공연은 결코 쉬는 법이 없다. 1990년 첫 거리공연을 시작한 이후 벌써 횟수로 26년째 이어온 공연이다. 하지만 방식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깨에 멘 기타와 작은북 하나, 그리고 목소리가 전부다. 여기에 입담과 재담은 덤이다.
가수도, 개그맨도 아니건만 윤씨의 노랫가락과 흥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목소리가 마로니에 공원 앞에 쩌렁쩌렁 울리면 지나가던 행인들도 하나둘 모여들어 금세 한 무리를 이룬다. 윤씨의 공연이 절정에 이른 것은 이때부터다. 신명나게 노래를 부르다 음이 너무 높다 싶으면 태연하게 옥타브를 낮춰 부르고, 공연을 보는 시민들에게 괜한 호통까지 친다. 하지만 누구하나 뭐라는 이 없다. 되레 즐거워하며 박수로 화답한다.
공연 중 한 시민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윤씨가 한 마디 내뱉는다. “핸드폰 받지 말랬지” 그리고는 미안했던지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며 귀염을 떤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린다.
발라드로 잠시 쉬어가는 타임. 관중들이 박수를 치자, 윤씨는 “발라드에 무슨 박수를 쳐, 그냥 들어”라며 거침없는 언사를 토해낸다. 이번에는 시민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자 “따라 부르지 말랬잖아”라며 역성을 내기도 한다. 그런 윤씨에 좌중은 또 한 번 폭소했다. 한 곡조가 끝났다 싶어 박수가 나오면 “아직 안 끝났어, 박수치지 마”라며 태연하게 간주를 이어가는 모습이 가희 천부적이다.
노래를 부르던 중 이번에는 ‘삑사리’가 났다. 갑자기 걸걸해진 목소리에 시민들이 당황하자 “여러분 제가 원래 가성인데 하도 소리를 많이 질러 이제는 탁성이 됐어요”라고 말해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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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거리공연 중인 윤효상씨.(사진=정찬대 기자) |
“대학로는 모두의 공간…길거리 공연문화 지켜줘야”
윤씨는 앰프를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주변의 다른 공연 팀은 마이크나 앰프를 쓰지만 그는 육성만을 고집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앰프소리에 힘껏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시끄러운 기계음에 목소리는 금세 묻히고 만다.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한 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목소리가 안 들리면 시민들께 가까이 오라고 한다. 육성공연은 시민과 제가 좀 더 친밀하고, 가까워질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윤씨는 길거리 공연문화에 대한 쓴 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거리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다. 특히 대학로는 많은 이들이 공연하는 곳인데, 자기 공연만 중요하다며 저렇게 앰프를 켜는 것은 거리공연의 올바른 문화가 아니다”고 질책했다. 무분별한 길거리 공연문화를 꼬집은 것이다.

△대학로에서 거리공연 중인 김철민씨.(사진=정찬대 기자)
‘유머니스트’가 된 그의 사연
윤씨에게 있어 천직 같아 보이는 거리공연, 하지만 재담과 입담은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던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던 중 물건배달을 위해 대학로를 찾았다가, 기타를 치며 공연하는 한 거리 예술가의 모습에 매료돼 곧장 그의 보조노릇을 자처하게 된다. 거리공연과 대학로 그리고 윤효상이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이다.
그때부터 매일같이 그를 따라다니며 독특한 입담 등을 키워나갔고, 여기에 윤씨가 갖고 있는 끼와 엉뚱함까지 더해져 지금의 ‘윤효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거리공연을 하던 중 지금의 파트너 김철민(MBC 공채5기 개그맨)씨를 만나게 됐고, 현재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씨는 컬투의 정찬우, 김태균씨와 공채 개그맨 동기이기도 하다.
윤씨는 거리공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면서도 좀 더 보람된 일을 고민했다. 그리고 궁리 끝에 불우이웃을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다 쓰고 남은 돈은 버리고 가세요”라며 삥(?) 뜯듯 성금을 걷는 그는 스스로도 “수익금이지만 사실 반 강제적으로 뺏는다”며 너털웃음을 내보였다. 그렇게 모아진 돈은 전액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
성금을 내는 것은 자유지만, 핏대가 서도록 노래하고 재밌는 공연까지 보여준 길거리 악사에게 건네는 천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 더군다나 좋은 일에 쓴다고 하니 내면서도 뿌듯하다.
21년 전 2명의 불우이웃 돕기로 시작한 모금활동은 현재 15명의 아이를 후원할 정도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큰 생각 없이 도왔는데, 이제는 그 아이들을 후원하면서도 가슴이 아린다”고 말한 윤씨에게서 가슴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는 스스로를 ‘유머니스트’라 칭한다. 돌아가신 그의 장인어른께서 지어주셨는데, 유머와 휴머니스트의 합성어라 한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그를 표현할 단어는 없을 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다.

△윤효상씨가 공연 중 시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정찬대 기자)
윤효상, 당신은 누구신가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주말 오후면 한결같은 모습으로 공연하는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은 윤씨의 정체를 궁금해 한다. 과거 ‘KBS 열린음악회’ 오프닝을 10년 넘게 담당했고, ‘폭소클럽’이라는 방송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그의 본 직업은 레크리에이션 강사다. 현재는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교육원에서 격주로 강연도 한다.
“젊었을 땐 주위에서 백수건달이라며 걱정도 많았지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거리공연이 결국 윤씨 직업의 원천이 됐다. 이제는 인기도 꽤 높아져 여기저기서 찾는데도 많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돈을 벌지는 않는다.
“각박해진 세상,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을 되찾아 주기 위해 거리공연을 하는 거예요”, “집사람이 서운해 할지 몰라도 저는 쓸 만큼만 벌고, 그 외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그는 자신의 일에 한없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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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공연을 마친 윤효상씨가 벽에 기댄 채 잠시 쉬고 있다.(사진=정찬대 기자) |
‘모두가 같은 마음’…종로에서의 거리공연
26년 동안 거리공연을 하다 보니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오래전에 종로에서 거리공연을 하던 중 분위기가 심상찮아 보이는 ‘어깨들’이 깽판을 친 적이 있다. ‘누구 허락 받고 공연하느냐’며 언성을 높여 무대는 순간 험한 기류에 휩싸였고, 공연을 지켜보단 서민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이를 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경찰서까지 가 그들을 인계했다.
윤씨는 고마움의 표시로 소주라도 한 잔 대접하고자 근처 가게로 갔는데, 옆에 있던 중년의 부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아직도 이런 시민의식이 있느냐’며 술값을 모두 내고 간 일이 있었다.
“아파도 그냥 지나치고 누가 맞아도 모른 척 하는 요즘 시대에 별것도 아닌 일을 시민들이 내 일처럼 여기는데,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의 공연과 공연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가슴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일화다. 윤씨는 그날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거리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시민과 내가 하나 되어 원활한 피드백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윤씨는 애초 공연기간을 30년으로 정해 놨다. 어느덧 26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4년이 남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끼와 천성을 버릴 수 없어 “체력이 되는 한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공연에는 정(情)이 배어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거리공연이지만, 주말이면 많은 시민이 윤씨의 공연을 찾고 한 마음으로 즐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의 삶에 쉼표 하나를 건네고 싶다는 윤효상씨. 흥이 났는지 밤늦도록 공연은 끝나지 않았고, 시민들도 그 자리를 지켜선 채 함께 공연을 즐겼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다음은 윤효상씨와의 일문일답>
Q) 많은 이들이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다. 개그맨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방송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한 직업이 무엇인가.
A) 레크리에이션 강사다. 과거 KBS 열린음악회 오프닝 담당을 10년 넘게 했었고, 방송출연도 가끔 했다. 지금은 아산에 있는 경찰교육원에서 격주로 강연을 나가고 있다.
Q) 길거리 공연에 대한 시민들의 인기가 상당한 것 같다.
A) 인기라고 할 건 없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거리공연 때문에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길로 가게 됐다. 젊었을 땐 주위에서 백수건달이라며 걱정도 많았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거리공연이 내 직업의 원천이 된 셈이다.
Q) 육성으로만 공연하는데, 힘들진 않나?
A) 물론 힘들다. 그러나 육성에 묘미가 있다. 많은 팀들이 대학로에서 거리공연을 하는데, 지금도 보면 앰프를 켜놓으니깐 굉장히 시끄럽다. 거리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잘못 된 것이다. 전부가 앰프 켜놓고 자기 공연이 최고인양 그러는데, 정말 시끄럽다. 이것이야말로 거리문화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연 보다가 좀 지겨우면 옆에 있는 공연도 보고 뭐 이런 식으로 돼야하는데, 저렇게 떠들어 대는 앰프소리에 육성이 모두 묻혀버린다. 이는 길거리 공연문화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길거리 공연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한 곳의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는 것인데,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가졌으면 좋겠다.
Q) 쉰 목소리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데 크게 한 몫 하는 것 같은데.
A) 육성을 고집하고 거리공연을 계속 하다보니깐 목이 갔다. 그런데 쉰 목소리도 나름 매력 있지 않은가?(웃음)
Q) 길거리 공연은 언제부터 했나?
A) 1990년에 시작해 횟수로 26년이 됐다.
Q) 공연 시간대가 따로 있는 것인가?
A) 아니다. 대중없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기 때문에 저녁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Q) 거리공연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A) 군 제대 후 배달 일을 했다. 그런데 물건 배달하러 이곳 대학로에 왔다가 거리공연을 보고 매료됐다. 내 친구도 여기서 기타치고 노래했는데, 사람들과 함께 호응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래서 무리에 끼게 됐고, 이후 현재 함께하는 친구(김철민씨)를 만나 지금껏 같이 공연하고 있다.
Q) 길거리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 있다면?
A) 관객이 때론 음악가가 될 수 있고, 연주가가 될 수도 있다. 관객과 내가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딱딱한 세상, 모두가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세상에 뭔가 웃음을 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행복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거리공연이 분명 일조한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Q) 잊지 못할 관객이나,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A) 예전에 종로에서 거리공연을 하는데, 건달 같은 사람들이 육두문자를 써가며 ‘누구 허락받고 공연하느냐’며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무대까지 올라와 몸싸움을 벌이는데, 공연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무대로 우르르 몰려와 이를 저지했고, 결국 50여명이 함께 경찰서까지 동행해 그들을 인계했다. 당시 시민의식에 굉장히 놀랐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모습을 보기는 정말 힘들지 않나. 아파도 그냥 지나치고 누가 맞아도 모른 척 지나가는 개인주의화된 세상에, 별일 아닌 것을 자기 일인 양 그렇게 나서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 모시고 소주한잔 마시려고 근처 아는 형님 가게로 갔는데, 제주도에서 올라온 중년부부가 그 모습을 보고 ‘아직도 이런 시민의식이 남아있냐’며 술값을 모두 내주셨던 기억이 있다.
Q) 길거리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좋은 곳에 쓴다고 들었는데.
A) 수익금이고 할 순 없고, 그저 반 강제적으로 뺏는 것이다. 처음 2명에서 시작된 불우이웃돕기가 이제는 많이 늘어 15명 정도 후원해 주고 있다. 그리고 고아원에 쌀을 보내는 등 여하튼 거리공연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모두 그런 곳에 기부하고 있다. 기부한지는 21년 정도 되어 가는데, 전에는 그냥 큰 생각 없이 했지만, 지금은 그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애틋해지는 것을 느낀다.
Q) 겨울이나 여름철 공연이 특히 힘들 것 같은데.
A) 즐기고 있어 그리 고생스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날씨가 추우면 기타 줄이 자주 끊어지는 것이 애로사항이라면 애로사항이다.(웃음)
Q) 길거리 공연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어떤가. 부인께서 걱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
A) 물론 그랬다. 막 결혼해서 거리공연만 하고 직업이 없다보니 걱정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거리공연을 통해 이후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됐으니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길거리 공연으로 직업도 구하고, 수입도 생기고, 더불어 좋은 일도 하고 있으니 이제는 집사람도 별 얘기를 안 한다.
Q) 과거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길거리 공연과 차이가 있다면?
A) 방송은 나름대로 짜인 콘티 안에서 웃겨야 하니깐 그것이 어렵고, 거리공연은 맘대로 할 수 있어 쉽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또 어려움이 있다. 거리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드백이 가장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거리공연이 훨씬 더 역동적이고 재미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A) 거리공연도 이정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잠깐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가면 ‘이런 사람이 있다’는 이정표 정도는 심어줘야 한다고 본다. 내 스스로 거리공연 기간을 최소 30년으로 정해 놨다. 하지만 30년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할 생각이다. 물론 모든 거리공연은 앞으로도 육성으로만 진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