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효성, 수백억대 회계부정 의혹…“흔적 안 남게 박멸” 지시
“중공업만 300억대 부정…그룹 전체 보면 천문학적 규모”
  • 김기성 기자
  • 15.09.2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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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사장 등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 의혹을 받고 있는 효성이 최소 수백억원대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상 수주로 실적을 부풀린 뒤, 막상 손실로 잡아야 할 시점에서 이를 모두 삭제 처리했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특히 내부 고발자는 이런 불법이 그룹 최고위층의 묵인과 지시 하에 조직적이고도 치밀하게 저질러졌다고 증언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고 경영층은 관련 법령이 규정한 분식 및 부정공시 등에 따른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그룹의 이미지 추락은 물론 투자자 등 시장의 신뢰에도 타격이 될 전망이다.

 

효성은 지난 2013년 초 그룹 차원에서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인 ERP를 전면 교체한다. ERP 교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조현문 당시 효성중공업PG장(부사장)은 형인 조현준 사장이 특정 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긴 것으로 보고 별도의 감사를 실시, 형제 간 분쟁이 본격화된다. 조 부사장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에게 조현준 사장의 횡령을 고발하고 이상운 부회장 등 관련자들을 문책할 것을 요구했으나, 되레 자신이 파문 당한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전력PU 영업팀 한곳만 88억…“이 부회장이 삭제 지시”

 

ERP 교체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PG장이 공석인 틈을 타 대규모의 회계 부정이 저질러졌다. 제보자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은 2012년 말 ERP 교체를 눈앞에 두고 영업팀별로 부실 수주잔을 취합해 각 PU장에게 보고한다. 주어진 실적목표를 달성키 위해 특약점들을 동원, 가상 매출을 채워 넣은 것으로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생산과 판매로는 이어지지 않도록 창원공장 설계·제작부서와 긴밀히 협업했다.

 

규모 또한 방대했다. 전력PU 내 일반변압기영업팀 한 곳에서만 88억2300여만원의 부실 수주잔이 발견됐다. 품목은 배전변압기와 E&S, 몰드변압기로, 대부분이 특약점을 통해 이뤄진 가공의 발주다. 전력PU는 문제가 된 일반변압기영업팀 외에도 중전영업팀, 전력영업1·2팀, 용접기영업팀, 전장영업팀 등 총 20개의 영업팀으로 이뤄져 있다. 또 기전PU(영업팀 9개)에서 취합된 부실 수주잔은 총 250억원에 달한다.

 

 

효성중공업은 전력, 기전, 굿스프링스 3개의 PU와 풍력사업단으로 구성돼 있다. 매출구조를 보면 전력PU가 50% 내외로 절대적이며, 기전PU가 30% 내외, 굿스프링스PU가 20% 안팎을 책임진다.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각 영업팀의 부실을 더하면 그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게 제보자 주장이다. 이 같은 부정은 내부고발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 등 그 어떤 형태의 감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배경이 있었다. 부실은 조현문 부사장이 회사에서 내쳐지면서 이상운 부회장에게 보고된다. 이 부회장은 효성의 대표이사로, 각 사업부문을 총괄하며 조석래 회장을 지근에서 보필하는 그룹 내 2인자다. 제보자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백모 전력PU장과 이모 기전 PU장이 보고한 부실 수주잔 취소 품의서에 서명 결재하지 않고, 구두로 삭제를 지시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마이너스 취소해야 할 대규모 부실 수주잔이 드러나게 되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PU장들이 이 부회장의 묵인과 지시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다”고 말했다. 또 ”조현문 전 부사장을 비롯해 정윤택 재무본부장(사장), 한청준 상무 등이 있었다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부정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 사람 모두 관행과의 단절을 통한 윤리경영, 정도경영, 투명경영을 기치로 내걸었었다. 다분히 조현준 사장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조현문 부사장의 최측근이기도 한 한청준 상무의 경우, 2012년 12월17일 중공업PG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부실 수주잔 금액이 막대한 규모가 될 때까지 오랜 기간 은폐하고 방치하여 경영정보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허위보고가 있었으며, 현금흐름 창출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선매출을 계상하는 행위, 작업절차와 기준을 준수하지 않아 생산차질과 품질저하를 야기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조직적 은폐…“흔적 안 남게 박멸하라”

 

조현문 부사장 등 신진 혁신파의 패배는 결국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부회장 등 집권세력이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부실이 조직적인 회계 조작으로 이어졌다. 취재팀이 단독 입수한 당시 내부문서 등을 보면, 문제가 된 전력PU 일반변압기영업팀장은 ERP 교체 개발업무에 투입된 한 담당자에게 사내 이메일을 통해 “너만 믿는다”며 수주잔 최종본을 파일로 건넨다. 파일을 열면 A와 B의 구분이 눈에 띈다. A그룹은 구 ERP에서 새로운 ERP로 넘겨야 할 문제가 없는 진성 수주잔이며, B그룹은 이전시키지 않고 털어야 할 가상 수주잔이란 게 제보자 설명이다.

 

실제 구 ERP에는 존재하는 오더번호가 새 ERP에는 없다. 사내 전산망의 ‘MIFOS→목록→구ERP(oracle)'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전력PU 일반변압기영업팀에서 새 ERP로 이전되지 않고 남겨진 부실 수주잔의 금액을 더하면 88억2377만원으로 집계된다. 이것 역시 일개 팀의 것에 불과하다. 이는 단지 효성중공업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건설 등 전통적으로 재무구조가 불투명한 계열사로 범위를 넓힐 경우 은폐된 부실 수주잔은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효성중공업의 부실 수주잔 삭제를 입증하는 사내 이메일. 관련자들은 최고 경영층의 지시와 비호 아래 조직적이고도 은밀하게 삭제작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ERP 교체 프로젝트에 투입된 LG CNS 등 PI 추진단의 눈을 속이기 위한 조직적 은폐도 확인된다. 한 담당자의 이메일 보고를 보면 “88억이라는 부실 수주잔을 ‘취소’를 했어야 했으나 해당 수주잔을 취소하면 그만큼의 수주실적이 마이너스 처리됨”이라며 “2012년 9월부터 2013년 1월10일까지 수주잔 데이터가 SAP(새 ERP)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DATA ERROR'라는 논리를 펼쳐서 PI추진단과 전력PU 관리팀 등을 설득하고, 설명하고 주장하여 결국 부실 수주잔을 마이너스 처리하지 않고 ’삭제‘ 처리함으로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고, 지시하신 대로 각 파트장 책임 하에 부실 수주잔을 정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절대 보안 유지’라는 제목의 업무 공조 이메일을 보면 “삭제 처리를 하였으나 만에 하나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각자의 수주잔 B에 대해 다시 한 번 SAP에서 확인해 주기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추가로 삭제할’ 오더는 000와 조심스럽고도 조용히 협의해 주시고, 삭제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그 정합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면서 “(1)SAP 체제에서 실질적으로 수주잔에 남아 있어야 할 오더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 (2)삭제되어야 할 수주잔 B가 완전히 ‘박멸’되었는지 확인 (3)SAP에서 생산, 판매해야 할 것이 수주잔 LIST에서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하며, SAP에서 생산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수주잔 확인, SALES ORDER 조회를 통해 조회가 되지 않는지 확인하며,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생산되는 불상사는 없어야겠다”는 내용이 결론으로 재차 당부돼 있다.

 

이에 대해 제보자는 “이 부회장의 비호 아래 PU장→담당 임원→팀장→파트장→영업 담당자 등이 유기적이고 은밀하게 부실 수주잔을 삭제 처리했다”며 “곳간 열쇠를 맡겨놨더니 주인 몰래 곳간을 빼돌린 격으로, 사내 부정이 만연하다는 단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또 "최고경영층을 기망하는 행위였다"고 증언해, 이런 과정이 조석래 회장 모르게 진행된 것으로 믿고 있음을 내비쳤다. 

 

◇"정상적 영업활동“ vs. ”기업이 아니라 범죄집단"

 

취재팀은 회계 조작에 직접 관여한 당시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다들 입을 맞춘 듯 “홍보팀과 연락하라”는 답변만 내놨다. 또 제기된 의혹은 부정하지 않은 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했다.

 

실무자에게 직접 삭제 지시를 내린 효성중공업 전력PU 일반변압기영업팀장은 “제가 머리가 좋지 않아서인지 오래 전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고, 한 임원은 “그게 왜 배임까지 연결되는지 모르겠다”면서 사실상 관련 내용을 시인했다. 또 이모 당시 기전PU장은 “기억나는 게 없다”며 “ERP를 바꾸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겠나. 시스템 과정에서 잘못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책임을 시스템의 오류 탓으로 넘겼다.

 

이외에도 효성중공업 전력PU와 기전PU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했으나 모두 비슷한 답변만 내놨다. 다만 취재팀과 연락이 닿은 그 누구도 해당 내용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접촉한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의혹 제기된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며 해당 사업부는 공공연히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말했으며, 한 관계자는 “임원들 모두 짐 싸게 할 일 있느냐”며 취재 중단을 부탁하기도 했다.

 

관련자들 태도와는 달리 효성은 취재팀이 해당 의혹과 관련해 보낸 서면 질의에 "ERP 상에서의 수주 취소 및 삭제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며, 내부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제기된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답변했다. 또 ‘내부 규정에 따라 이뤄진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라면 보안을 요구하면서까지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삭제를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추가 질의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이에 대해 "기업이 아니라 범죄집단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또 해당 사업부 영업팀 간부들은 관련 보도가 임박했다는 사내 소문을 접한 뒤 메신저를 통해 ”추석 앞두고 뭔일이야“, ”터질 게 터졌다“, ”그렇게 부실 정리하라 했는데 결국…“,  ”그건 정말 대지진이네. 부회장님까지 흔들면“, ”살벌하다"는 반응들을 주고받았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명백한 분식회계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 등 관련 법령에 저촉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외에도 자금의 용처 등에 따라 횡령 및 배임, 사기 혐의도 적용할 여지가 있다는 게 기업형사 및 자본시장법 전문 변호사들의 의견이다.

 

원문: 뉴스토마토

 

김기성·김영택 기자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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