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평등 속의 불평등…영원한 약자 ‘여성·청년·노인’
에코세대 “출발선부터 다르다”…결혼 엄두 못내고 집세에 허덕
  • 정찬대
  • 15.12.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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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대표적인 공업단지인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우모(30·여)씨는 지역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공단에서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우씨는 정규직이 아니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애초 대학 전공이 취직에 유리하지도 않아 공단에서 일하게 된 것조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씨가 한 달 일해 받는 돈은 120만원 남짓이다.

 

열심히 일했지만 생활고는 심해졌다. 박한 급여 때문이다. 고용이 불안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회사 눈치도 더해졌다. 육아휴직은 정규직에게나 해당되는 제도다. 심지어 인격 모독이나 성희롱을 경험한 동료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정규직 전환은 언감생심이다. 기존 정규직도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전체 임직원이 30명도 안 되다 보니 노조 등 하소연할 곳도 없다. 우씨는 직장을 계속해서 다녀야 할 지 고민이다.

 

여성은 노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다. 2016년도 삼성그룹 승진 인사에서 첫 여성 엔지니어 출신의 부사장이 배출돼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다. 독신인 데다 “배터리와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일만 알았기에 가능했다. 때문에 뉴스가 된다.

 

3월말 기준 국내 30대 그룹(부영 제외) 임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실제, 여성 근로자 대부분은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짊어지며 이는 회사와의 대척점이 된다. 경력단절 여성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3년 국가인권원회가 낸 노동자 인권 보고서를 보면, 총 761만8000명의 여성 노동자 가운데 우씨처럼 비정규직은 57.5%(438만명)다. 남성 노동자(1012만5200명)의 비정규직 비율이 37.2%(376만2500명)인 것과 비교하면 여성의 비정규직 비중이 훨씬 높다.

 

우씨와 같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 소득은 112만원 수준이다. 정규직 남성의 3분의 1(35.4%), 정규직 여성의 절반(55.3%)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비정규직이더라도 남성 근로자의 65.7% 수준만 받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 불평등, 이중에서도 여성 비정규직이 감내해야 하는 소득 불평등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청년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자식 세대(1979년~1992년)를 통상 에코 세대라고 칭하는데, 그 숫자는 954만명을 헤아린다. 이들은 세대 내에서 제대로 된 경쟁도 하기 전에 불평등의 굴레에서 허덕인다. 부모 세대로부터 대물림 받은 재산의 불평등이 출발선 자체를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에코 세대의 자산을 최하위 20%부터 최상위 20%까지 5분위로 나눠 비교한 결과, 자산 최하위 20%의 평균 자산은 2284만원인 데 반해 최상위 20%는 6억9914만원으로 나타났다. 격차는 무려 30.6배다. 전체 가구 가운데 자산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차이가 34.5배임을 고려하면 부모세대의 재산 불평등이 자식세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사진/뉴스토마토

 

 

금수저를 넘는 다이아몬드수저는 따로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상장사 주식을 1억원 이상 보유한 미성년자(1995년 9월30일 이후 출생)는 262명으로 조사됐다. 100억원이 넘는 주식을 가진 미성년자도 16명이었다. 미성년 주식부자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1년여 만에 173.9% 올라 1조58억원이 됐다.

 


반면 대다수 청년들은 취업의 문을 뚫기도 벅차다. 채용난과 박봉의 현실 속에 결혼과 보육은 부담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난 배경이다. 통계청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인 가구는 6.3%포인트(16.0%→22.3%) 급증했다. 2인 가구도 1.7%포인트(22.6%→24.3%) 늘었지만 1인 가구에 비해 증가폭이 둔했다. 같은 기간 3인 가구는 2.2%포인트, 4인 가구는 3.8%포인트, 5인 가구는 2.0%포인트 줄었다.

 

또 늘어난 1인 가구 대부분은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지방 청년들이다. 이들은 또 다시 월세 부담에 시달린다. 월세 40만원, 6.6㎡의 비좁은 고시원에 정착하는 청년들이 해마다 느는 데는 이 같은 구조적 요인이 있다. 김지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주택의 양적 부족은 해소됐지만 주거 불안정 문제는 여전하다”며 “특히 20대의 월세 비중이 다른 세대보다 높고 거주공간 확보와 주거비 부담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의 20·30대 833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를 보면 월평균 소비 중 주거비 비중이 31%~40%인 경우가 27.7%, 50% 이상도 22.1%나 됐다. 또 전체의 절반이 넘는 69.2%가 소비의 3분의 1을 집값으로 썼다. 지난해 중소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이 258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년 700만원 이상의 돈이 집값으로 빠진다. 소득 불평등이 재산 불평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축이나 투자에 돈을 돌려야 하지만, 현실은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하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노인들이 겪는 빈곤과 불평등 역시 지나칠 수 없는 사회 문제다. 연령별 지니계수를 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0.396으로, 전체 지니계수 0.302보다 0.094 높았다. 이를 다시, 근로 연령인구(18~65세)의 지니계수 0.281과 비교하면 노인인구의 지니계수는 0.115 높다.

 

상대적 빈곤율을 보면 심각성은 더해진다. 지난해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7.4%로, 전체 인구(14.4%)와 근로 연령인구의 상대적 빈곤율(9.3%)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전체 인구와 근로 연령인구의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 모두 2006년 이후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노인인구는 모두 악화됐다.

 

노인의 경제적 궁핍과 불평등은 은퇴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소득이 끊기고, 심지어 독거노인이 늘고 있는 현실과 맞물린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0명 중 3명에 그쳤다. 또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독거노인은 3.4%포인트(3.7%→7.1%) 늘어난 반면 자녀와 함께 사는 비율은 0.5%포인트(1.3%→1.8%) 오르는 데 그쳤다.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식에게 짊이 되기 싫어 혼자인 삶을 택하는 것이 오늘날의 노인 세대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에 따르면, 대다수의 노인들은 경제적 궁핍에다, 육체적 능력을 상실했다는 자존감 결여까지 겹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사회에 이어 가족에까지 소외되면서 자칫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12년까지 전체 인구 자살률이 10만명당 8.8명에서 29.1명으로 3.3배 증가할 때,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4.3명에서 69.8명으로 4.9배 증가했다. 노인 자살인구는 전체 자살인구 대비 40.7명이 많다.

 

원문: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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