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IT세상] 아이폰 ‘암호해제’ 놓고 美정부·애플 치킨게임 ‘왜’
美보수층 “아이폰 보안기능이 테러수사 걸림돌”…IT업계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요”
  • 정의식 기자
  • 16.02.2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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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한 대의 잠금을 해제하느냐 못하느냐를 놓고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AOL)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사람의 휴대폰을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까? 아니면 테러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개인의 사생활은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것일까? 


테러리스트의 아이폰 잠금잠치를 해제해달라는 미국 정부와 법원의 명령을 애플이 공개적으로 거부하자,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 등 보수정치권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구글 등 IT기업들은 애플의 옹호자로 나섰다. 애플이 과연 법원의 명령을 끝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법원, 애플에 “잠금해제 툴 개발하라”
팀 쿡 “안된다.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
찬반 놓고 IT업계·정부 극한 대립

 

△샌 버나디노 테러사건의 현장 모습. (사진=인터넷커뮤니티)

 

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동부 샌 버나디노 시의 발달장애인 복지·재활시설 ‘인랜드 리저널 센터’에 무장괴한 2명이 갑자기 난입, 총기를 난사했다. 모두 14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두 명의 범인은 경찰과의 추격전 끝에 사살됐으며, 신원은 사이드 R 파룩(28)과 타시핀 말리크(27·여) 부부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초기에 이 사건을 단순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추정했으나, 이후 부부가 둘 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던 사실이 드러났고, 아내 말리크가 사건 직전 페이스북으로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서약을 한 것도 확인됐다. 단순한 총기난사 사건이 아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사건이었던 것.

 

△샌 버나디노 테러사건의 두 용의자. (사진=CBS캡처)

FBI “아이폰 잠금해제는 불가능”

 

이후 FBI(美연방수사국)는 범인 부부의 배후 연계를 추적하기 위해 파룩이 쓰던 아이폰5C의 ‘잠금해제’를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하지만 두달 간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FBI는 ‘잠금해제’를 풀지 못했다.


왜냐하면 파룩의 아이폰에는 잘못된 비밀번호를 10번 이상 입력할 경우 기기 내의 모든 데이터가 자동 삭제되는 기능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 애플은 지난 2014년 iOS 8 이후 이 같은 개인정보 전체 암호화 기능을 제공해왔다.
 
이렇게 되자 FBI는 법원에 도움을 청했고, 지난 16일(현지시간) 연방 치안법원 판사 셰리 핌은 애플에게 “수사당국에 합리적인 기술 지원을 하라”고 판결했다. 
법원 명령의 요지는 ▲‘비밀번호 10번 오류 시 데이터 자동삭제’ 기능을 무력화하는 소프트웨어를 수사당국에 제공하고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다른 프로토콜을 이용해 암호를 입력할 수 있는 기능과 ▲잘못된 비밀번호가 반복적으로 입력됐을 때 일정 시간 동안 입력이 지연되는 설정을 해제하는 기능을 제공하라는 것.
 
이같은 소프트웨어가 지원될 경우 수사당국은 다양한 비밀번호 조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결국 해법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팀 쿡 애플 CEO가 애플 홈페이지에 올린 고객 메시지. (사진=애플)

 

애플 “정부는 백도어 제작 강요마라”

 

하지만 애플은 법원의 명령에 즉각적인 거부 입장을 공표했다.

 
팀 쿡 애플 CEO는 16일(현지시간) ‘고객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미국 정부가 우리 고객들의 보안을 위협하는 전례없는 조치를 취할 것을 애플에 요구하고 있지만, 거부한다”며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한 공공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문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주장의 골자는 “스마트폰의 개인 정보는 해커나 범죄자들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애플조차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FBI가 보안을 우회할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며, 우리는 정부의 도를 넘는 요청에 맞서겠다. 정부는 우리에게 백도어 제작을 강요해선 안된다”라는 것이었다.

 

△애플이 법원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사진=플리커)

 

트럼프 “법원 명령에 100% 동의”


애플이 단호한 거부 입장을 밝히자, 이번엔 공화당의 대선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반발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17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원 명령에 100% 동의한다”며 “그들(애플)은 도대체 자신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애플은 잠금장치를 풀어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반적인 안보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는 잠금장치를 풀고, (테러를 막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의 새 슬로건 ‘보수적 상식(Common-Sense Conservative)’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소속의 상원 정보위원회 의장 리차드 버(Richard Burr) 상원의원 역시 “법원 명령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애플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1990년대에 암호화를 위해 싸웠던 민주당 상원의원 다이안 파인스타인(Dianne Feinstein)까지도 “정부가 그 휴대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의원들이 법원의 결정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 소속 저스틴 아마쉬(Justin Amash) 하원의원은 “법무부의 요청은 불합리하고 위헌적”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순다 피차이 CEO가 5개의 트윗을 올려 애플을 옹호했다. (사진=트위터)

 

IT업계 “애플과 함께 하겠다”


IT업계는 너나없이 애플의 옹호자로 나섰다.

구글의 순다 피차이 CEO는 18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연속적으로 5개의 트윗을 올려 애플에 대한 지지 의견을 피력했다. 

피차이는 “팀 쿡이 중요한 메시지를 내놨다”며 “기업들에게 해킹이 가능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은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타협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당국이 범죄와 테러리즘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업들에게 이용자의 기기와 데이터를 해킹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심도깊고 공개적인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트위터, 링크드인, 에버노트, 드랍박스, AOL 등으로 구성된 ‘정부감시개혁(RGS)’도 애플의 옹호자로 나섰다. (사진=RGS)

 

애플, 구글은 물론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트위터, 링크드인, 에버노트, 드랍박스, AOL 등 쟁쟁한 IT기업들로 구성된 ‘정부감시개혁(RGS, Reform Government Surveillance)’도 18일 성명을 통해 “RGS 가입 기업들은 사법기관이 요구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동시에 고객과 고객의 정보 보안 보호에 전념할 것”이라며 “어떤 기업도 (보안을 우회하는) 백도어를 만들라는 요구를 받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페이스북 최고기술책임자 출신 브렛 테일러는 트위터를 통해 “실리콘밸리는 애플과 함께 한다”고 밝혔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전 임원 스티븐 시노프스키도 “테크업계 전체가 애플을 지지하자”고 말했다.
 
지난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기밀문서를 폭로한 이후 러시아에서 망명생활 중인 에드워드 스노든도 트위터를 통해 이 사건을 “지난 10년간 가장 중요한 기술 사례”라고 언급했다.

△인터넷 검열을 반대해온 ‘전자프런티어재단(EFF)’도 애플 옹호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EFF)

 

인터넷 검열에 반대하는 비영리조직 ‘전자프런티어재단(EFF)’도 애플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16일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발표한 공개 성명을 통해 “애플은 전세계 모든 사용자의 보안 침해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정부는 단순히 애플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애플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정부는 애플에 하나의 전화기를 해제할 수 있는 마스터 키를 생성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마스터 키가 생성되면 정부는 다른 휴대폰에 대해서도 이를 요청할 것”이라며 “설사 미국 정부가 신뢰할만하다 해도 전 세계의 다른 정부는 시민들의 안전을 저해할 것이 확실시 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상황은 애플을 대표로 한 전체 IT업계와 미국 정부·법원·공화당·일부 민주당 의원들 등 공권력이 맞대결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법치주의와 국가안보,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 등 다양한 이슈가 맞물려 있는 문제라 당분간은 지리한 법정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의식 IT전문 기자]

 

*본 기사는 CNB뉴스와 함께 게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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