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준금리 1.50%의 의미…미국發 금리변수에 ‘살얼음판’
빚내서 집값 떠받치라는 정부…‘기업 살리고자 가계부채 나몰라’
  • 정찬대 기자
  • 15.06.1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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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연 1.75%의 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1.50%의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모습.(사진=한국은행 홈페이지)

 

메르스 공포가 결국 금리까지 끌어내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연 1.75%의 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1.50%로 확정했다. 사상 초유의 1%대 기준금리시대를 연지 불과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운 것이다.

 

한국은행 측은 경제악화에 따른 선제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엔저와 수출둔화, 내수경기 침체 등을 금리인하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인하 결정과 관련, “최근 메르스로 인해 서비스업 등의 타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경제주체 심리와 실물경제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미리 완화하기 위해서는 선제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전했다. 특히, 금리인하를 공공연하게 주장했던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정부가 추진 중인 메르스 대책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금리조절은 통화정책의 핵심이다. 최소 6개월을 내다보고 통화정책을 펴는 것이 일반적이다. 메르스 여파에 따른 단기간의 경기부양책으로 내려질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당장 금리인하에 따른 가계부채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회복은커녕 부동산 거품만 키운 ‘악수’를 뒀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기업을 살리고자 가계부채 악화는 나몰라 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빚내서 집값 떠받치라는 정부…가계부채 외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1.50%로 낮춘 뒤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한국은행 홈페이지)

금리인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계부채의 증가다. 1%대 금리 시 은행에 보증금을 넣어둘 이유가 없어진다. 결국, 주택시장의 월세 전환비율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전세가격 급등은 ‘깡통전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불안감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금리인하 정책으로 부동산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은행 이율이 저렴해진 만큼 부동산 거래량이 늘 것이란 분석이다. 이미 부동산 규제완화를 1년 더 연장키로 했으며,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대폭 완화한 상태다.

 

하지만 금리가 다시 오르고 집값이 떨어질 경우 빚내서 집샀던 서민들의 가계 부담은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결국, 원리금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일본의 경우가 그랬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이를 증명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국민이 빚을 내 집값을 떠받치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까지 끼면서 매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15년 4월 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에 따르면 지난 4월 금융기관 가계대출은 10조1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 달 전보다 10조1000억원 증가한 규모다.

 

특히, 금융권 가계대출과 보험사, 카드사 등 대출액을 합산한 가계부채는 3월말 기준 1099조3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치가 가뜩이나 증가 속도가 빨라진 가계부채에 기름을 부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월셋값 상승 시 소비위축…저소득층 ‘타격’ 심화

 

이런 가운데 전·월셋값 상승이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특히, 금리인하에 따른 경기활성화를 강조하면서, 한국은행 내부에서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지난 4일 한국은행 조사국 김정성 과장이 발표한 ‘주택시장의 월세 주거비 상승이 소비 및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가격이 10% 인상될 때 소비가 그 절반에 가까운 4.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월셋값이 오를 경우 저소득층과 30대 이하의 소비가 큰 폭으로 준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월세가 10% 오를 때 저소득층의 소비는 0.85% 감소하고, 39세 이하는 9.77% 줄어든다고 밝혔다. 즉, 가계에서 차지하는 주택의 부담이 이들 층에서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반면, 월세가 오른다고 집주인의 소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집주인이 월세 수입을 소비하거나 다른 곳에 투자하기보다 주로 저축했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전세에서 2014년 월세로 전환한 임대인 가구의 저축액은 평균 285만원 늘어났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투자’보다는 ‘안정성’을 택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월셋값의 증가는 소득분배도 악화시켰다. 월세가 1% 오를 시 소득격차는 0.05%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월세 비중이 늘면서 ‘월세주거비 상승→경직적 지출 확대→재산형성 제약’ 등의 경로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금리인하 정책, 기업투자 정말로 늘까?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금리인하에 따른 기업의 투자는 늘어날까? 많은 이들은 정부의 이 같은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업들은 저금리 정책으로 조달금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자부담이 줄면서 막힌 숨통을 조금 틔울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저금리 정책의 실질적 혜택은 대기업에 쏠려있다. 그렇다보니 효과가 제한적이란 말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낙수효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두운 경제전망과 소비심리 위축은 기업이 투자를 미루고 현금을 선호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막대한 현금보유액을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에 쓰지 않고 유휴자산으로 놀리면서, 기업의 자산은 늘어난 반면,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로 인하하면서 사상 초유의 1%대 기준금리시대를 열었다. 정부는 내수 진작과 수출 등 산업계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2분기부터는 바닥을 치고 상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5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0.9% 급락하는 등 매월 감소폭이 증가하고 있다. 산업 생산은 3월(-0.5%)과 4월(-0.3%) 두 달 연속 줄어들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5월 수출액은 423억92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9%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두 자릿수 이상 수출이 줄어든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2009년 8월 20.9% 감소에 이어 5년 9개월만이다. 특히, 이 같은 추세가 지난 1월부터 다섯 달 연속 계속됐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달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3.6%, 0.3% 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세월호 사태가 발생한 점을 상기할 때 이 같은 미미한 회복세는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로 메르스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회복될 계기가 생겼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메르스로 인한 내수 타격은 유통업과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메르스 발병 직후인 6월 첫 주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6.5% 감소했다. 대형마트 매출액도 3.4% 빠졌다. 서비스업계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유통업과 서비스업, 관광산업이 이처럼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전염성이 강한 메르스 때문에 소비자들이 애당초 외출을 삼가거나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저금리를 통해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진작시키겠다고 한다. 국민은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밖에 없다.

 

美 금리인상 예고…국내경제 타격 불가피

 

△(사진=SBS뉴스 캡처)

지난 11일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발표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5.29포인트(0.26%) 오른 2,056.61에 장을 마쳤고, 코스닥 지수는 되레 소폭(0.17%) 하락했다.

 

다음날인 12일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증권 업종 지수는 전일 대비 1.88% 하락했으며, 코스피 전 업종 지수 가운데 두 번째로 낙폭이 컸다. 금리하락이 채권의 평가이익 증가와 주식시장의 자금유입 효과로 증권가의 호재로 인식됐던 점을 상기할 때 초라하다.

 

이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어렵다는 시각이 나오면서 증권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채권시장은 이미 금리인상을 대비하고 있다. 재니 예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역시 연내 금리를 올리겠다고 했으며, 국제금리도 상승 국면에 들어섰다.

 

이주열 총재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국제금리가 인상돼도 섣불리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국제금리 인상 시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550조원 이상의 글로벌 투자자금 일부가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주가하락과 환율급등 등 충격파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우리는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금융위기를 몰고 온 사례를 충분히 경험했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미국 통화정책 급변에 따른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를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결국,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앞서 언급했듯 서민경제는 파탄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이는 올 하반기, 정부가 지금처럼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을 살리고자 가계부채는 나몰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국제금리 인상에 따른 혜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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