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원
[인문학 두드림] 잔혹한 서사, 대부
 
  • 유재원 칼럼
  • 15.05.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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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절할 수 없을 거야,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테니까.”

잔혹한 서사, 『대부(The Godfather)』

 

가끔씩은 장대한 시·공간과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서사(narrative, 敍事)가 인기를 끈다. 『변신이야기』,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서사가 낯설다면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같은 대하류(大河類)의 서사쯤은 다들 인상깊게 접하셨으리라 본다.

 

그런데 여기 미국식(式)으로 잘 버무려진 특별한 서사가 한편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식의 시대극이면서도 『하이 눈』, 『황야의 무법자』의 활극 같은 기괴한 서사다. 어쩌면, 이태리 이민들의 애잔한 정착사(史)라든가 뉴욕·LA·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극(劇)이라고나 할까.

 

소설이자 영화인 『대부(The Godfather)』는 그런 작품이다. 음울하고 비장하면서도 동시에 잔혹하고 화려한, 미국식의 무협활극 대(大)서사랄까. 중절모에 회색정장을 차려 입은 이태리 남자들이, 케챱에 버무린 마카로니를 사이에 두고 서로 총질을 해대는 부적절한 난장(亂場)일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시칠리아에선 누군가 마피아에게 보복을 당하면 자연히 그 자녀들도 ‘피의 복수’를 이어갈 운명에 놓였다. 부모를 여읜 꼬를레오네는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살아남았고, 그 후 패밀리를 이끌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약속’과 ‘믿음’이 온 세상의 ‘돈’과 각자의 ‘목숨’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대부를 둘러싼 쏘니, 프레도, 마이클 세 아들들과 자문역(콘실리에리) 헤이건까지 이들이 전수받은 대부의 기질(das Blut)은 각양각색이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무한정 탐욕스럽고 적(enemy)에 대해서는 철저하리만큼 잔인한 편이다.

 

뉴욕의 뒷골목에서 제각각으로 분파된 이태리계(系) 패밀리들은 유래 깊은 증오로 서로를 파탄 내는데, 『대부』 전편(全篇)을 관통하는 피의 복수극은 합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집단적 분노에 가까울 정도다. 밀주, 도박, 매춘, 마약, 유흥업, 노조 등에까지 사업을 확장한 여러 패밀리들은 서로를 철저히 이해관계로 보면서도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고자 하는 악랄한 본능을 발동한다.

 

어느 날, 돈 꼬를레오네 패밀리는 밀수마약업 문제와 라스베가스 카지노 문제로 갑작스런 내분과 외압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던 중 대부가 총격을 당하고 큰아들 쏘니가 피살되는 불운을 경험한다. 하지만 유능한 후계자를 발견한 대부는 새로운 대부(Don) 마이클을 세워 상대 패밀리들을 몰살하고 조직을 재정비한다. 이쯤 되면 뒷골목의 암투를 그린 르뽀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작품 『대부』가 전하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1969년 발간된 이 소설은 전쟁과 불황의 음울한 미국 분위기 속에서 수천만부가 팔리며 크게 히트했고, 이후 작가 마리오 뿌조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을 조우하여 극작가로서 『대부』시리즈를 이어갔다. 소설로 작게 시작한 이태리 마피아 이야기는 영화 『대부』시리즈를 거치며 점차 대담해지고 화려해진다.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같은 유명배우의 인상 깊은 연기와, 철저한 고증을 거친 이태리·미국·쿠바 현지의 영상미는 시대가 흘러도 깊게 남아 있다. 슬픈 선율이 잔잔히 흐르는 비장한 영화음악을 듣고 있다 치면, 스스럼없이 『대부』시리즈 속의 마피아 패밀리와 공감을 나누게 되곤 한다.

 

길고 장대한 서사 속에서 대부는 패밀리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친구를 가까이 두되, 적들은 더 가까이 둬라”

“미워하지 마라, 상대를 미워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네 생각을 남들이 쉽게 알게 해서는 안된다!”

“정치와 범죄의 본질은 같아”

“너의 적은 내 적이기도 해”

“지금껏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세상에 죽이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야”

 

 

대부는 어떤 사람인가. 대부는 대자(代子) 조니 폰테인(프랭크 시나트라라는 설이 있음)이 영화배역을 얻지 못하자 영화제작자의 수십만 달러짜리 말을 죽일 정도로 무모한 사내다. 또 큰 아들의 죽음 이후 타탈리아·바르지니 패밀리와 화해를 시도하는 척 하면서 은밀히 복수극을 조종하는 음흉한 인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부는 포용력 있는 아버지이거나 존경스러운 흠모의 대상이 아니다. 대부는 철저히 이기적이면서 자기 고통을 몇 배로 다른 이의 고통으로 바꾸려는 잔인성을 가졌다. 어쩌면 대부는 부모가 이유 없이 학살당한 유년시절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올리브유를 거래하던 장년시절을 거쳤기에, 그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은 적합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옥에서 건져 올린 복수의 화신이었을 테니 말이다. 평생을 지옥의 늪에서 살아가는 그는 단지 자신들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이태리 혈통을 끔찍이 여겼고 패밀리에 도전하는 누군가에게 칼을 꽂아야 했을 게다.

 

『대부』. 무려 40여 년간 한낱 “갱스터 소설”, “무식한 폭력물”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 문제작은 이제 고전(古典)으로 변모하여 요즘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오로지 증오와 배신, 음모와 보복을 넘나들면서 긴 서사를 이어가는 동안, 작품 『대부』는 세상 사람들에게 한 가지 점을 뚜렷하게 암시한다.

 

“정의가 있는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다. 하지만 악의 존재는 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악이 어떤 모습인가는 똑똑히 보여줄 수 있다”

 

이처럼 『대부』는 우리 사회가 광명을 희구하고 있음에도, 매일처럼 범죄와 비리가 계속되는 이유를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혹독하게 악이 탄생하고 어떻게 하여 잔인한 모습으로 점점 자라나는지를 말이다.

 

지금도 대부는 어둠 속에 앉아, 상대가 교황청추기경이든 할리웃영화제작자이든 쿠바대통령이든지 간에 패밀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제안을 받을 거네. 난 그가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할테니까 말야(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유재원 변호사(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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