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두
[칼럼] 지능 아닌 지혜, 지혜 아닌 지능의 시대
긍정과 부정의 언어, 그리고 융합형 인간의 자녀교육
  • 구병두
  • 16.10.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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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밥 먹을 때 말하면 복 달아난다’는 말이 있다. 식사 중 말을 해서 복이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침이나 이물질이 튈 경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잘 씹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점에서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육적 의미로 쓰인 말이다.

 

옛 어른들은 아이의 행동 교정을 위해 부정적 방법을 사용하곤 했다. 앞서 속담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를 ‘미신적 강화(superstitious reinforcement)’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미신적 강화란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속설을 이용해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바로잡으려는 부정적 자극을 의미한다. 반대 기제를 통해 자연스레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일종의 충격 요법인 셈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밥 먹을 때 말하면 복 달아난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 물론 당시 어른들이 ‘미신적 강화’란 용어를 알고 있진 못했을 테다. 숱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아이의 잘못된 행동습관을 바로잡는데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자녀교육에 적절히 활용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학교 교육을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한 요즘 부모들보다 어쩌면 한 수 위의 지혜를 지녔다고 해도 과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신적 강화가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밤에 손톱을 깎으면 어른들은 “밤에 손톱 깎으면 귀신 나타난다”며 겁을 줬다. 이는 아이들을 무섭게 하기 위해 마냥 지어낸 말이 아니라 그릇된 행동을 소거(extinction)시키기 위한 일종의 교육적 방법의 일환이었다. 그래도 호기심 많은 녀석들은 실제로 귀신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늦은 저녁 손톱을 깎곤 한다. 그럴 때면 더 심한 말도 했다. “밤에 손톱 깎으면 엄마가 죽는다”는 등의 말이 그것이다. 제 아무리 호기심이 많고 심장이 강한 아이도 이 말엔 손톱 깎기를 포기한다. 이처럼 우리 어머니들이 사용하는 자녀교육의 언어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됐다.

 

21세기 들어 지구상에 가장 주목받는 유태인의 경우 밥상에서 아이들과의 토론이 생활화돼 있다. 이를 흔히 ‘밥상토론’이라고들 말한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되는 토론을 하다보면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가 발달하리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가족과 식사하며 나누는 담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유태인의 자녀교육은 지적교육을 겸비한 인성교육이 특징이다. 만약 아직도 “밥 먹을 때 말하면 복 달아난다”고 얘기하는 부모가 있다면 이는 아이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가난했던 시절 식사를 끝내자마자 또래들과 놀기 위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면 밥 먹고 뜀박질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이것이 식사 직후 무리한 운동이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염려 섞인 얘기는 아니었다.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밥 먹자마자 뛰어놀면 소화가 너무 잘돼 자기 전에 배고플까 염려돼 한 말이었다.

 

가정의 일상적인 자녀교육도 시대변화에 따라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식사도 거른 채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열중하던 아이가 동네 놀이터에서 또래와 놀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면 이는 분명 칭찬 받을 일이다.

 

세계적 리더십 권위자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는 급하지만 덜 중요한 일보다 덜 급하지만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고 조언한다. 아이의 건강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데 모두들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엄마들은 아이의 건강보다 공부를 더 우선시한다.

 

교육학자로 30여년을 살아온 필자도 이젠 자녀교육에 왕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 것 같다. 가난한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세대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공부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고,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도 오늘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미했다. 방과 후 아이들이 하는 일은 고작 소 풀 한 망태 베면 그만인 일과였다.

 

여름방학이면 점심 먹고 난 뒤 뜰에 소를 방목해놓고 어른 키 한길 반 되는 꽤나 깊은 개울에서 입술이 새파랗도록 무자맥질을 하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다. 방학 이틀쯤 남겨놓고 밀린 숙제를 하는 모습에 어른들은 한결같이 “이 집에 정승하나 나겠다”며 비웃음 섞인 농담을 하셨고, 그게 무슨 소린지도 모른 채 방학숙제에 몰입하여 끝내고 나면 엄청나게 보람된 일을 완수한양 가슴 뿌듯해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공부 때문에 칭찬 받은 일도, 이 때문에 혼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성적표 받아오는 날, 일 년에 두 번 혼나면 됐으니 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는 거의 받지 않고 자란 셈이다.

 

다만, 지적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인성교육은 그 무엇보다 엄하고 철저했다.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굴 때면 어김없이 호통과 회초리가 날아왔다. 필자 세대들이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정(情)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이런 가정교육에 기인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 말하지 않는가.

 

“밥 먹을 때 말하면 복 달아난다”, “밤에 손톱 깎으면 귀신 나온다” 더 심하면 “밤에 손톱 깎으면 엄마 죽는다” 등의 속담은 옛날 어머니들의 자녀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신적 강화로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고치려 했던 점은 그 나름의 좋은 평가를 받아도 무방하다.

 

허나 21세기 지식 창조시대에서의 자녀교육은 보다 긍정적인 언어가 사용돼야 한다. 여기에 인성교육을 중시했던 옛 어머니들의 지혜도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형 인간은 이렇게 길러지기 때문이다. 바로 유태인 어머니들의 지혜로운 자녀 교육에서처럼 말이다.

 

구병두 교수

서경대학교 교양과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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