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한일회담
‘졸속협정’ 이은 ‘부실회담’ 우려…신중한 접근 필요
  • 정유담 기자
  • 15.06.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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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주변에선 올 가을쯤이 유력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함께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과거사 해결에 대한 양국 간 논의다. 이 문제가 얼마나 진척되느냐에 따라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점에서 1965년 6월22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결한 잘못된 협정의 책임을 박 대통령이 얼마나 수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965년 한일협정은 경제 원조를 얻기 위한 ‘졸속협정’이란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한 모습.(사진=청와대)

양국 ‘특사’ 접견…훈풍 맞은 한일 관계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22일 ‘한·일 국교정상화 50돌’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서다. 이에 화답하듯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박 대통령과 함께 힘을 합쳐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현 정부 들어 위안부, 독도 문제, 과거사 왜곡 등으로 좀체 거리가 좁혀지지 않던 양국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청와대 안팎에선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모처럼만에 양국이 훈풍을 맞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이날 아베 총리와 직접 면담해 박 대통령 구두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양국 정상의 ‘특사’ 역할을 했고, 일본에서는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아베 총리의 특사로 박 대통령을 접견해 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보다 하루 앞선 21일, 윤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외무장관과 일본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 연단에는 1965년 12월18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기본조약 비준 당시 사용된 한글 병풍까지 동원돼 양국 간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왼쪽)이 21일 일본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사진=외교부)

‘입장 선회’ 朴대통령, “과거사 짐 내려놓자”

 

박 대통령은 얼마 전까지 일본에 대한 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역사왜곡 교과서의 수정 등이 한일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임을 명확히 했다.

 

박 대통령은 또 ‘역사란 편할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했다.

 

지난 4월 브라질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기초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히는 등 그간의 강경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최근 입장은 눈에 띄게 유연해졌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행사에서도 박 대통령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이 미래로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어야할 역사적 과제”(지난 3·1절 기념사)라고 강조한 박 대통령이 결국, “한일관계의 원년” “미래지향적 관계”를 내세우며 “과거사의 짐을 내려놓자”고 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유흥수 주일대사는 20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가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가 아니다”며 “어느 정도 이 문제에 대한 양해가 있는 가운데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내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도록 환경정비에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朴대통령,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의 진실은?

 

양국 관계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여러 의문점을 남긴다. 더욱이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보듯 ‘밀실협약’ 가능성까지 제기돼 적잖은 우려를 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일본 내 유력 언론들은 “구체적 진전이 없다”고 보도하면서 ‘협의의 실체’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청와대는 ‘박 대통령 인터뷰 원문공개’ 요구를 거부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사죄 성명을 발표하는 대신, 한국 정부는 문제의 최종 해결을 보증하는 구상을 내놓는 것으로 양국 간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측에 아베 총리가 사죄와 책임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재정을 지원하는 요구안을 제시했고, 일본은 국내외 소녀상 철거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을 것을 보증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내용이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관련 보도를 즉각 부인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언급한 ‘위안부 협상의 진전’이 ‘이것’이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 美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사진=청와대)

한일협정 뛰어넘는 한일회담 가능할까?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다. 1965년 6월22일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약속 받았다. 전국 각지에서는 ‘졸속협정’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물리적 저지를 강행했다. 이른바 ‘6·3사태’다. 결국 폭압적 통치를 기반으로 한일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이에 앞서 1951년 9월8일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이뤄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전승국 지위를 받지 못한 한국은 여러모로 불리한 여건에서 교섭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냉전체제 따른 한·미·일 동맹 강화를 요구한 미국과 전후 청산과 아시아 국가에 대한 시장 확보를 염두에 둔 일본, 그리고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데다 경제개발의 재원 확보가 시급한 박정희 정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한일협정이 이뤄졌다.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금은 ‘경제부흥’이란 이유로 박정희 정권에 고스란히 유입됐고,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보상청구권은 철저히 거부됐다. 일본이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모든 배상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일본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최근 보도에서 “일본 측은 1965년 청구협정에서 해결됐다는 입장”이라며 “(한일 간) 간극이 크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배상금이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및 보상 성격이 아닌, 경제협력 형식의 지원금인 점을 감안할 때 재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청구권협정을 대체할 새 협정이나 추가협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협정 당시 빠져있던 위안부, 강제징용자, 사할린 억류자, 피폭자, 환수대상 문화재 등의 문제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 역시 쇄도하고 있다.

 

한일 수교 50년,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정상회담 성사라는 목적에만 매달리지 말고, 실효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회담을 이끌어야 하는 절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정상회담 성사에만 급급한 나머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해결에 대한 진척 없이 회담이 이뤄질 시 ‘졸속협정’에 이은 또 다른 ‘부실회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베 총리의 인식에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된 협정 책임을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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