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승민 속내’ 뒤집어보기…‘고개는 숙였지만’
‘구밀복검’의 한 마디…사과문 곳곳 깨알 같은 ‘반박’
  • 정찬대 기자
  • 15.06.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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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죄한 것이다.

 

친박(친박근혜)계의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일관한 그는 한발 물러선 모습을 취한 채 박 대통령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마음을 푸시라” “송구하다” “마음을 열어 달라”며 전에 없던 낮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사과문 행간에는 박 대통령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말 속에 뼈가 있는 유 원내대표 사과문을 다시 한 번 뒤집어봤다.

 

△유승민 원내대표.(사진=새누리당)

‘국회법개정안 아니었음 공무원연금법도 통과 안 돼’

 

유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과에서 열린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박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운을 뗀 뒤 자신이 직접 준비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먼저 ‘공무원연금개혁법안’으로 말문을 열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요구로 공무원연금법과 연계해 처리된 법안이다.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에 사활을 건 박 대통령은 조윤선 정무수석의 사퇴 카드까지 꺼내들며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연금법 처리를 위해선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국회법 개정안이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께서 100% 만족스럽진 못하셨지만, 공무원연금법의 국회통과를 가장 절실하게 원하셨던 것으로 믿었다”며 “(이 때문에) 원내대표로서 가장 노력을 기울인 것도 박근혜정부의 개혁과제로 길이 남을 공무원연금개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공무원연금개혁을 꼭 이뤄내서 현 정부의 개혁성과로 남겨야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 저나 김무성 대표, 또 새누리당 국회의원 모두의 진심이었다”고 덧붙였다.

 

△국회 본회의 모습.(사진=커버리지 DB)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선진화법 누가 통과시켰지?’

 

그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는 “저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면서도 “국회 사정상 야당이 반대하면 꼼짝할 수 없는 그런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를 종합해보면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이 반대할 시 법안통과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해서라도 공무원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는 박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기에 무리수를 둬서라도 처리했다는 말로 해석된다.

 

여기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국회선진화법이 2012년 4월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 대통령 진두지휘 하에 통과시킨 법안이란 점이다.

 

‘뭔 소리야, 경제법안 30개 중 23개는 이미 처리했는데’

 

그는 또 박 대통령이 전날 자신을 비판하며 한 ‘경제법안 발목’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물론 서두는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된다.

 

유 원내대표는 “경제활성화법도 30개 중 23개가 처리됐다”고 설명한 뒤 “5개정도 남은 경제활성화법은 야당이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법들”이라고 어려움을 토해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3년째 발이 묶여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 법들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서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묻고 싶다”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어 “여당 원내사령탑이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유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발언은 사실과 달랐다. 30개 관련법안 가운데 이미 23개는 국회를 통과해 76%이상이 관철된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이 경제법안 타령만 되풀이 하고 있다”며 ‘대통령 국회법 관련 발언의 허와 실’이라는 제목의 자료까지 배포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한 모습.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발동했다. 아울러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사진=청와대)
‘거부권 파동으로 그마저 처리될 경제법안도 무산’

 

‘경제법안 발목’에 대한 유 원내대표의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법이나 하도급법도 어제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본회의가 무산됐다”고 했다. 즉, 국회 파행으로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국회 파행의 발단은 박 대통령이었다. 전날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새정치연합은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다. 6월 국회가 파행을 빚은 것이다.

 

‘어른스럽지 못한 靑…메르스 사태에 이게 뭐야‘

 

유 원내대표는 당청 갈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물론, 앞서 마찬가지로 “송구하다”는 말로 시작된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그 경위가 어떻게 됐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한 몸으로 일하고, 메르스 사태 등 이 비상한 시국에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할 정부여당이 국민들께서 오히려 걱정하시도록 만든 점에 대해서 참으로 송구하다”고 거듭 사죄했다.

 

앞서 유 원내대표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당청 협의를 거부한 청와대를 향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당·정·청이 국민께 봉사하고 희생하는 그런 정부여당으로 거듭날 중요한 시점”이라며 “저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박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일 국립의료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는 모습.(사진=청와대)

공 넘긴 유승민…“박 대통령 마음 여는 게 중요”

 

유 원내대표는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도 에둘러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박 대통령을 향해 “저 뿐만 아니라 당 전체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마음을 여시는 게 중요하다”며 당청 간 관계회복을 거듭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사죄 후 모든 공을 박 대통령에게 넘긴 셈이다.

 

그는 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 문제는 지금 시비하기엔 너무 늦은 이야기”라며 “답변하지 않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는 ‘강제성과 위헌성이 없다’고 한 기존의 입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유 원내대표는 앞서 15일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할 당시에도 “애초부터 강제성이나 위헌소지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행정부와 국회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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