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승민과 김무성, 그리고 박근혜와 친박의 선택지
‘게임 체인저’ 유승민, 김무성과 친박 명운 가른다
  • 정찬대 기자
  • 15.06.29 19:38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으로 촉발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29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유 원내대표에 대한 거취 문제를 논의했지만 끝내 결론내지 못했다.

 

일단 유 원내대표에게 고민할 시간을 줬지만, 본인 스스로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만큼 이 문제가 의원총회에 부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난 25일 의총에서 한 차례 ‘재신임’ 받은 바와 같이 또 다시 ‘신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박 대통령의 ‘교시’를 받은 친박(친박근혜)계는 유 원내대표 사퇴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비박(비박근혜)계 역시 ‘유승민 지키기’로 맞서면서 양 계파 간 대결양상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는 정치공학적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얽힌 ‘게임 체인저(정국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변수)’로 주목된다.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의 흐름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의미다.

 

먼저, 비박계가 승기를 잡을 경우 친박의 쇠퇴와 함께 박 대통령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다. 반면, 박 대통령 요구대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시 친박의 입지 강화는 물론 총선 정국을 앞두고 친박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사진=새누리당)

#1. 유승민의 선택지

‘소신이냐, 현실이냐’

 

유 원내대표는 현재 ‘소신’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당초 ‘끝까지 가겠다’는 강경 입장에서 ‘고민하겠다’는 유연한 자세를 취한 것도 이를 잘 방증한다.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이다. 대구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이다. 또 친박계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유 원내대표 선택은 향후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대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며 “지역구를 옮긴다면 모를까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은 채 대구에서 계속 정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쨌든 대구사람들 뇌리에 ‘배신’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는 만큼 유 원내대표에게도 적잖은 부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당선된 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대구시민에게 보내는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음 총선에서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민심이 박 대통령을 등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호남에서 줄줄이 낙마한 경험이 있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도 2008년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호남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모든 것이 절대적일 순 없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할 경우 초라한 뒷모습만 남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자진 사퇴할 경우 20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 자기 정치에 대한 미래를 고민할 때”라며 “나아가느냐, 도태되느냐는 이번 기회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현재 당 안팎에선 이번 기회에 ‘자기 정치’를 가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역 민심은 일단 유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CBS노컷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박계의 ‘유승민 사퇴’ 주장에 대해 대구경북(TK) 응답자의 58.2%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원내대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우)와 유승민 원내대표.(사진=새누리당)

#2. 김무성의 선택지

‘아직은 전쟁 치를 때 아냐’

 

김 대표 입장에선 이렇다 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 김 대표는 그간 의원들 뜻을 앞세워 유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이끌어냈다.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유 원내대표 거취의 최종 결정은 최고위가 아닌 의총”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노골적인 반대와 친박계의 거듭된 사퇴 요구에 김 대표가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친박 최고위원들의 전원 사퇴로 김 대표 체제가 와해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에게 “청와대와 싸워서 끝까지 맞설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자진 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유 원내대표 다음 타깃은 김 대표일 수밖에 없다. 김무성-유승민 체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친박 쪽에서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체제 흔들기를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김 대표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를 방패삼아 총선 국면을 맞으려 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마냥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일단 당심(黨心)이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확인됐다. 40여명의 발언자 가운데 유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한 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차기 원내대표 선출도 비박계가 될 공산이 크다. 김 대표로선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일단 당심이 친박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도 차기 원내지도부는 비박 진영에서 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친박의 입지는 또 다시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 친박이 언제든 김무성 체제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만큼 새 원내지도부가 출범해도 당분간 당청 간 관계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명분을 주지 않은 채 ‘다음’을 준비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 대표 입장에선 아직 ‘전쟁’을 치를 때가 아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가운데)과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사진=청와대)

#3. 박 대통령과 친박의 선택지

‘이것 참 쉽지 않구만…’

 

지금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애가 타는 쪽은 박 대통령과 친박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김 대표에게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지도부를 흔들 순 없다. 만약 그럴 경우 부메랑이 되어 친박이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여론이나 당심은 친박을 등지고 있다.

 

여기에 김 대표가 ‘유승민 사태’에 따른 학습효과를 얻은 만큼 더더욱 틈을 보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공천 주도권을 쥐어야하는 친박 입장에선 여러모로 애가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박의 가장 큰 무기는 5명의 최고위원이다. 김 대표를 제외한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김을동 이정현 최고위원 모두가 유 원내대표 사퇴에 공감하며 의기투합한 상태다. 만약, 이들 5명이 동반 사퇴할 경우 김무성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친박 진영에선 의총 소집을 위한 정족수(16명)을 이미 채운 상태다. 유 원내대표에게 자진 사퇴의 시간을 준 뒤 여차하면 7월1일 의총을 열어 강제로 끌어내리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불신임’을 예단하긴 어렵다. 이미 지난 의총에서 한 차례 재신임 받은 터라 친박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현재 유 원내대표 거취와 관련, 최고위에서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의원총회에서 결정할 것인지를 놓고 최고위원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긴급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가) 최고위에서 (결론을 내고) 끝낼 일인지, 의원총회에서 끝낼 일인지는 최고위원 간 이견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김 대표는 줄곧 “의총을 통해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한 점을 미뤄볼 때 친박 진영이 ‘최고위 결정’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총을 통한 표결에 붙여질 경우 ‘재신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 사퇴가 불발될 시 박 대통령이나 친박 입장에선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된다. 자존심도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더욱이 향후 있을 총선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도 어려워진다. 집권 3년차, 아직은 당내 ‘친박의 힘’이 건재하다는 것을 유 원내대표 사퇴를 통해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