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거부권 파동’, 그리고 제1야당의 ‘무력감’
새정치연합이 ‘민생국회’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정찬대 기자
  • 15.06.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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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박근혜 대통령 메르스 무능과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새정치민주연합)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 그리고 이로 인한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간 아귀다툼은 한국정치의 불행한 단면을 보여준다. 민생보다 기득권을 우선시하는 박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따르는 ‘종박(박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을 보면서 한국정치의 수준은 그대로 드러났다.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에만 집착했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알량한 권력을 의회에 내주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 “국민 심판” 등을 언급하며 집권여당 원내지도부를 향해 거침없는 언사를 토해냈다. 오작동한 리모컨을 교체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회 해산’에 이은 박 대통령의 ‘원내지도부 해산’이다.

 

박 대통령 홍위병을 자처한 친박계는 대통령의 교시대로 ‘유승민 찍어내기’에 여념이 없고, 서슬 퍼런 제왕적 리더십에 고개 숙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마음을 푸시라”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삼권분립은 땅에 떨어졌다.

 

메르스 사태로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고, 경기 침체로 기업과 서민 모두 울상이다. 여기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심의 마음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자존심을 내건 권력다툼이 한창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1야당의 무력감 내지는 무존재감이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삼권분립에 반하는 박 대통령 발언이 쏟아졌는데, ‘비판적 워딩’ 외엔 이러다할 대응을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거부권 사태’와 관련, “집권여당이 힘이 있으니까 가능한 얘기”이라며 “새정치연합이 여당이었다면 우린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라디오인터뷰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를 언급하며 “새누리당이 야당이었다면 아마 이번 사태를 가지고 탄핵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권력투쟁 중인 정부여당에 대한 반사이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당내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특히, 친박-비박 간 다툼으로 정국이 급속히 당·청에 쏠리면서 새정치연합의 존재감은 더더욱 무색해졌다. 여기에 ‘거부권 파동’ 후 잠시 봉합 국면을 맞았지만, 얼마 전까지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간 대결 양상은 극에 달해있었다.

 

결국,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이 확인됐다면, ‘거부권 파동’은 박 대통령의 독재적 발상과 제1야당의 무능을 일깨워준 또 하나의 계기가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상임위 일정을 포함한 6월 국회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직후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한 새정치연합이 ‘민생국회’를 자임하며 걸어둔 빗장을 푼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국회 정상화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법 개정안을 재부의하겠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국회 보이콧’이란 초강수가 정부여당의 아귀다툼에 묻히면서 동력을 잃은 것이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국회에 안건을 상정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한 채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건데, 그게 뭐냐”며 “정의화 의장과 새누리당, 그리고 새정치연합이 ‘국회법 개정안 재부의’로 국회 정상화의 명분을 찾은 것 같다”고 씁쓸한 표정을 내보였다.

 

새누리당은 그간 새정치연합의 계파 갈등을 적절히 활용했다. 과거 ‘NLL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의 군불로 시작된 당내 갈등이 어느 정도 불붙었다 싶으면 슬쩍 발을 뺀 채 ‘민생’을 외쳤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그 반대 상황이 된 지금, 새정치연합은 그러나 그런 효과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다음 달 7일 예정된 김현웅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를 정국 전환의 터닝 포인트로 삼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어떤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국 이슈가 당-청으로 쏠린 것은 제1야당의 존재감이 그만큼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 새누리당 관계자의 발언이 씁쓸함을 남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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