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명무실’ 국회 윤리위…‘우리가 남이가’
‘활동 전무’ 국회 특위위원장, 매달 활동비 600만원 ‘꿀꺽’
  • 정찬대 기자
  • 15.08.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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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의 갑질과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녀의 취업청탁 논란부터 성폭행 구설수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하지만 국회의원 품위 손상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는 당 윤리위원회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개점휴업’한 채 유명무실이다. 제 식구 감싸기는 도를 넘어섰고, 온정주의는 극에 달했다. 19대 국회 윤리특위 징계 건수는 ‘0’건 이며, 처벌 논의를 미루다 회기 또는 시효가 만료됐다며 징계안을 폐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더욱이 국회 윤리특위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관련법 개정안은 여야 의원들의 암묵적 카르텔 속에 3년 넘게 잠자고 있다. <편집자 주>

 

△국회 본회의장(사진=커버리지 자료사진)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이 딸 취업청탁 논란과 관련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됐다. 하지만 31일 윤리심판원 발표를 앞두고 ‘시효 경과’로 징계를 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벌써부터 파문이 커지고 있다. 당 게시판에는 이에 대한 비판글이 쇄도하고 있으며, 윤 의원 딸이 최근까지 해당 기업에 근무했음에도 ‘2년 시효’가 지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병옥 윤리심판원장은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윤 의원 징계가) 시효를 벗어났다”고 했다. 아울러 “심판원이 징계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당규 제14조는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심판원이 징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윤 의원은 지난 2013년 LG디스플레이 법무팀 변호사 채용 과정에서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전화해 “딸이 지원했는데, 실력이 되는 아이면 들여다 봐 달라”고 한 것이 알려지면서 ‘취업청탁’ 논란에 휩싸였다.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경기 파주는 윤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윤 의원에 대한 비판이 당 전체로 확산되자 문재인 대표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윤리심판원에 직권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시효만료에 따른 징계불가’ 결정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과 함께 당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새누리 ‘의지박약’…땜질식 윤리위 구성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1년 3개월 동안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 여기에 위원장은 한 달 넘게 공석이었다. 지난달 14일 당 윤리위원장이었던 경대수 의원이 충북도당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직을 사퇴했고, 같은 날 김무성 대표는 신임 당직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윤리위원장을 빈칸으로 남겨뒀다.

 

그 사이 심학봉 의원 성폭행 의혹 사건이 발생했고, 김태원 의원 아들 취업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윤리위원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조사는 유야무야 넘기는 듯 했다. 하지만 비판여론이 커지면서 새누리당은 그제야 경대수 의원을 다시 불러 한시적인 권한대행을 맡겼다. 여기에 경 의원과 함께 직에서 물러난 김제식 의원도 윤리관으로 다시 앉혔다.

 

김 의원은 지난 1월 지역구를 방문하면서 해경 경비함정을 사적으로 이용해 논란을 빚은데 이어 최근에는 지역구 주민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등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윤리관을 맡기기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서 심학봉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 의견을 낸 가운데 남은 공은 이제 동료 의원들 손에 돌아가게 됐다.(사진=MBN뉴스 캡처)

윤리특위 징계의결 ‘0’건, 줄줄이 ‘자동폐기’

 

국회사무처 등에 따르면 19대 국회 들어 윤리특위에 제출된 의원 징계안은 모두 38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철회되거나 소멸된 건수를 제외한 총 25건 가운데 징계 의결은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란모의’ 사건으로 실형을 받고 구속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의원직 박탈도 국회 윤리특위가 아닌 헌법재판소에 의해 이뤄졌다.

 

국회 윤리특위는 여야가 각각 8명과 7명으로 나뉘어 동료 의원에 대한 윤리적 처분을 다룬다. 특히, 자당 의원에 대해선 ‘방탄특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정쟁’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허다해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현재 심학봉 의원 성폭행 의혹 사건에 대한 징계 결정이 예고돼 있지만, 수위가 확정되지 않은 채 논의 테이블에 안건만 올려놓은 상태다.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28일 심 의원에 대해 만장일치로 ‘의원직 제명’ 의견을 냈으며,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정수성 의원은 “9월2일 오후 9시 1차 전체회의를 하겠다”고 공고했다. 이후 소위원회 회의, 다시 전체회의 등을 거쳐 최종 징계안이 결정된다.

 

윤리특위에서 ‘의원직 제명’이 통과되면,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지난 18대 국회 당시 ‘성희롱 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강용석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윤리특위에서 ‘제명안’이 통과됐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에 못 미쳐 최종 부결된 바 있다.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등에 대해서도 ‘30일간 출석정지’ 의견을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윤리특위는 해당 안건에 대한 논의를 미루면서 징계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실제 이런 식으로 임기 만료돼 자동 폐기되는 징계안도 상당하다. 국회 윤리특위 의안처리현황을 보면 지난 18대 국회 당시 총 54건의 징계안이 접수된 가운데 철회 16건, 부결 7건, 임기만료는 30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결된 징계안은 단 한건에 불과하다. 17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37건의 징계안 가운데 16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10건은 부결 및 철회됐다. 겨우 10건의 징계안만이 윤리위에서 가결 처리됐다.

 

이와 관련해 윤리특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은 “윤리특위가 국회의 자정기능을 하는 곳인데, 국회의원들이 그동안 막말이라든가 품위손상, 이런 걸로 서로 징계신청을 많이 해 놓고도 실제로는 처리를 거의 못하고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국회 본청(사진=국회사무처)

공염불에 그친 국회법 개정안, 3년 넘게 계류 중

 

19대 국회 개원 당시 야야는 특권포기 경쟁을 벌이며 윤리특위의 정상화를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윤리심사위에 징계안에 대한 조사 및 심사, 징계 요구권까지 부여하는 등 권한을 대폭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단 한차례 논의도 없이 3년 넘게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 이지연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국회의원 스스로 동료의원을 징계하는 칼끝을 겨누는 결정을 내리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한 뒤 “(그렇기 때문에) 징계안이 올라와도 임기가 만료돼 폐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도 “각 당에 설치한 윤리위원회가 가동되지 않고 있다. 국회 윤리특위 또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과반 이상의 외부 사람이 (윤리특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산 정쟁’에 묻힌 '국회 특수활동비' 논의

 

국회 윤리특위의 활동 전무에도 불구하고 특위위원장은 매달 600여만 원 이상의 활동비를 수령 받고 있다. 정책개발, 연구단체 지원, 외교활동 지원 등 7개 명목으로 책정된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일명 ‘묻지마 예산’이다. 올해만 83억 9817만원이 책정됐다. 하는 일 없이 수백 만 원의 세비만 꼬박꼬박 챙겨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관련법 개정안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실제 지난해 4월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소관 상임위에서 먼지만 쌓인 채 일 년 넘게 계류 중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특수활동비의 투명성 담보를 위한 소위 구성을 요구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등 기밀사항을 다루는 정부 부처의 특수활동비 공개는 무책임하다며 맞서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특수활동비 사적 유용으로 발단이 된 국회 특수활동비 논란이 어느새 정부 예산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그 사이 정작 문제가 된 국회 특수활동비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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