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구민주계 좌장, 박지원의 일그러진 구상
“수장 못 베면, 수족을 베면 된다”
  • 정찬대 기자
  • 15.10.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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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사진=커버리지DB)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심정이 어떨까?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중진 용퇴론’의 압박이 거세다.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는 대법원 확정 판결 전인 1·2심 판결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 공천을 배제하겠다며 노골적으로 박 전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결과적으로 안으로는 ‘용퇴’, 밖으로는 ‘사정’의 칼날이 그를 옥죄고 있는 셈이다.

 

혁신위의 ‘인적 쇄신안’ 발표에 발끈하자 문재인 대표는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어느 쪽으로도 예단을 갖고 불이익을 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며 박 전 원내대표를 달랬다. 허나 구민주계 좌장격인 그의 체면은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지난달 20일 당무위원·의원총회 연석회의에서 문 대표 체제를 더 이상 흔들지 않기로 결의한데다, ‘말 많고 탈 많던’ 혁신안 역시 모두 통과되면서 박 전 원내대표 구상도 함께 일그러졌다.

 

“신당 창당은 상수” “몇 개 그룹이 신당을 논의 중” “천정배 신당 구상에 전적으로 공감”이라는 등 분당에 대한 군불을 떼면서 문 대표와 친노(친노무현) 진영을 압박해온 박 전 원내대표로선 적잖은 데미지의 일격을 얻어맞은 셈이다.

 

2·8전당대회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한 뒤 줄곧 당권에 대한 기회를 엿봤을 그에게 그간 ‘탈당 가능성’은 정치적 압박을 위한 ‘으름장’ 정도로 여겨졌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미래에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는 그의 발언도 정치적 레토릭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던 탈당은 조금씩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당 참여 여부와 관련, “그런 이야기는 아직 빠르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한 박 전 원내대표는 “공천(公薦)이 없으면 민천(民薦)이 있다”고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특히, “공천을 주지 않으면 그 길(탈당 및 신당 참여) 밖에 없지 않느냐”며 여과 없는 노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용퇴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의 공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천 탈락 시 찾아올 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문 대표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수족의 안위까지 책임질 형편은 못 된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수장을 못 베면, 수족을 베면 된다”는 말로 냉혹한 정치현실을 꼬집었다.

 

박지원계에는 김영록 이윤석 박혜자 의원 등 7~8명이 거론된다. 여기에 행동대장 격인 박기춘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일찌감치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박지원계는 결속력과 대중적 지지도가 약하다는 것이 맹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친노 측에선 일부 의원들의 ‘포섭’도 가능하다는 반응이다. 실제 <커버리지>와 만난 한 비주류 인사는 “공천권을 틀어쥐고 있는데, 별수 있겠느냐”며 “다들 각자도생하며 발버둥치는 상황”이라고 당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박 전 원내대표가 호남에서 살아 돌아와도 정치적 뜻을 함께할 ‘동지’가 없다면 입지는 전만 못하게 된다. 과거 18대 국회 당시 정동영 의원이 그랬고, 19대 국회에선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그랬다. 패군지장의 발언이 언론의 이목을 끌 순 있어도, 여러 의원들의 동요를 얻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호시탐탐 당권을 노리는 박 전 원내대표가 공천을 약속받을 경우 신당의 선택지를 택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당내 한 축을 담당하는 구민주계 좌장격 대우를 받고 있는 그도 신당에서는 ‘One of Them’(여러 사람 중 한사람)일 뿐이다. 더욱이 재판이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할 때 제1야당의 뒷배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박 전 원내대표에게는 냉험한 패권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친노 진영의 압박은 이미 턱 밑까지 조여 온 상태다.

 

‘천정배 신당’을 비롯해 탈당파들의 신당 추진 움직임은 단기적으로 박 전 원내대표에게 나쁘지 않다. 이러한 시류에 ‘호남이 양분될 수 있다’는 당 안팎의 인식은 문 대표에게 적절히 먹히는 카드로 이용된다. 이는 곧 수족이 잘려도 박 전 원내대표가 호남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내년 총선 이후 야권 분열 등 여러 정치적 변수 속에서 또 다시 당권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박 전 원내대표로선 이러한 현실이 뼈아프다. 더욱이 ‘호남 지분’이 조금씩 신당으로 옮겨가는 상황도 그의 입지를 줄어들게 한다는 점에서 달갑지 않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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