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슈 터질 때마다 ‘자리 비우기’, 이번엔 미국으로…
국정교과서 ‘강행’ 뒤 ‘순방’…또 다시 책임 회피성 비켜가기
  • 정찬대 기자
  • 15.10.12 16:58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사진=YTN뉴스 캡처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했다. 각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7학년도에 사용되는 중·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한 것이다. 교육부는 해당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명명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역사교과서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내용이 많아 학생들에게 역사 인식에 대한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단 시기에 달성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며 국정교과서 방침 배경을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긍정적 측면의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일종의 강변인 셈이다.

 

朴대통령 또 다시 순방…책임 회피성 비켜가기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교육부 발표 다음날 미국 순방길에 오른다. 오는 16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서다. 이번 순방에서는 역대 대통령 중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미(美)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도 방문한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를 찾아 양국 간 첨단산업의 파트너십도 강화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 치적(治績)은 방송은 물론 주요 일간지의 일면 장식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매번 이런 식이다. 누군가 총대를 메면, 응당 책임져야할 책임자는 홀연히 사라진 채 자리를 비운다. 그리고 온갖 의미와 성과가 부각된 해외 발(發) 기사가 쏟아진다. 해명으로 대처한 이명박 정부와 비교할 때 좀 더 기획화된 책임 회피성 비켜가기다.

 

현 정부 하에 발생한 굵직한 정치 이슈나 사건이 있을 때면 박 대통령은 늘 국내에 없었다. 국정교과서 논란에 따른 갑론을박과 이념 논쟁이 한창이 이때에도 박 대통령은 미국 순방을 앞두고 있다. 출국 당일 예정된 국무회의는 박 대통령이 아닌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한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언급은 아마도 황 총리가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관련 언급을 자제했다. 어떤 것도 얘기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정교과서 발표 직전 청와대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까지 대통령께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우려와 올바르고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바 있다”며 “현재로서 그것 이상의 말씀을 드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굵직한 이슈 때마다 ‘자리 비우기’

 

앞서 언급했듯 굵직한 국내 이슈가 터질 때면 박 대통령은 늘 순방길에 오른 채 자리를 비웠다. 지난 4월16일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사고발생 1년이 되는 날, 박 대통령은 중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해외순방에 대한 반발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추모 일정을 진행한 뒤 떠날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추모에 불과했다.

 

박 대통령은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 이뤄질 이날 행사를 뒤로한 채 어찌된 영문인지 진도 팽목항으로 갔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박 대통령 자리까지 마련돼 있었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유족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팽목항에 갔다’는 비아냥까지 들렸다.

 

세월호 참사 1주기와 함께 당시는 ‘성완종 게이트 사건’으로 국내 정치가 뒤숭숭하던 시기였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 순방 도중 이완구 국무총리는 해당 사건에 연루돼 자진 사퇴했다. 박 대통령 귀국 뒤 사표가 수리됐지만, 사과 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대국민 메시지를 통한 유감 표명이 전부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함께 대표적 인사 실패로 지목되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논란 때에도 박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났다. 친일 논란으로 국민적 비판을 받은 문 후보자는 이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 순방 중인 지난해 6월 자진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인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당시에도 미국 순방길에 올랐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을 때는 중국에서 국내 정치 상황을 관망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후 ‘NLL 포기발언’ 및 ‘사초(史草) 폐기 논란’ 등으로 이슈가 옮겨붙었다.

 

2013년 11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박 대통령은 서유럽 순방 중이었다. 민감한 현안이 발생할 때면 늘 침묵한 채 해외로 떠났고, 순방 후 성과 홍보를 통해 이러한 논쟁과 이슈를 덮고자 했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이렇듯 논쟁을 비켜가는 통로의 역할을 한 셈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