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YS서거] 파란만장한 그의 삶, 그리고 그의 말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 정유담 기자
  • 15.11.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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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거목(巨木)이 스러졌다. 향년 88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0시 22분경 폐혈증과 급성심부전증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영욕의 세월을 뒤로한 채 눈을 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6년 만에 또 한 사람의 ‘정치 거목’이 스러지면서 한국 현대정치사를 이끌었던 ‘양김(兩金)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직설적이고 핵심을 담은 비유법으로 위기 상황을 돌파해 냈다. 또한 어조 하나하나에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강단(剛斷)이 배어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전 어록을 통해 그의 삶과 역사를 되돌아봤다. <편집자 주>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은 온다”

 

1979년 국회의원 제명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 박정희 군부 정권과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이 그해 9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내용(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철회 요구)을 문제 삼아 김 전 대통령을 징계, 의원직을 박탈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린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이 이긴다”

1979년 6월, 5·30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대도무문’은 김 전 대통령 살아생전 좌우명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 정치는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도 없다”

1973년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한 말.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정부의 테러행위를 강력 규탄했다. 김영삼(YS)과 김대중(DJ)은 정치적 경쟁자이자 동지였다.

 

“박정희 정권은 머지않아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1979년 8월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서울 마포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여성 노동자 1명이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YH사건 백서’를 발표하면서 한 말.

 

“날 감금할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과 마음은 전두환이가 빼앗지 못해”

1985년 2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불법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한 말. 김 전 대통령은 이후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 기념일부터 6월9일까지 무려 23일간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3당 합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 말. 1990년에 이뤄진 ‘3당 합당’(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통일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 평가에서 극명하게 엇갈리는 사건이다. 평생 맞섰던 정적들과 손을 맞잡음으로써 ‘정치적 야합’을 택한 그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 후보로 선출돼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군사정권을 마감,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

1993년 2월 첫 국무회의에서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를 선언하면서 한 말. 부정부패 척결을 앞세운 김 전 대통령은 ‘공직자 재산공개’에 대한 반발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가장 먼저 공개해 화제가 됐다.

 

“깜짝 놀랬재?”

1993년 3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전날 예고 없이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경질을 시작으로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 숙청을 시작하면서 한 말.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며 군 개혁의 칼바람을 예고했다.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

하나회 숙청 등 개혁 작업이 반발에 부딪치자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한 말. 김 전 대통령은 군 개혁 과정에서 “문(文)은 문답게, 무(武)는 무답게, 문과 무가 각기 제자리를 찾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95년 11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일본 각료들의 거듭된 과거사 망언에 대한 비판으로 한 말. 당시 일본 총무상은 “식민지 시절 좋은 일도 있었다”는 등의 망언을 했다. 김 전 대통령 발언은 “일본의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로 번역돼 일본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1997년 차남 현철 씨가 한보게이트에 연루돼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구속된 뒤 대국민사과를 통해 밝힌 말. 사상 초유의 대통령 아들 구속 사태로 김영삼 정권의 레임덕은 가속화됐다.

 

“쿠데타 세력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로 국민들을 괴롭혔던 것을 다 잊어버린 것 같은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느냐”

2010년 5월 취임 인사차 들른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 한 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이날 비판은 당시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대표 면전에 두고 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됐다.

 

“사자도 아니고, 칠푼이다”

2012년 7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해 “이번에는 토끼(김문수)가 사자(박근혜)를 잡는 격”이라고 하자 박근혜 의원을 평가절하하며 한 말. 앞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진두지휘한 4월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가 공천에서 탈락하자 진노했다고 전해진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을 해선 안 된다. 역사의 흐름과도 맞지 않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며 한 말.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젊을 때부터 동지 관계였다. 협력도 오랫동안 했고 경쟁도 오랫동안 했다. 둘이 합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 문병한 뒤 취재진과 만나 한 말. 김영삼(YS)과 김대중(DJ)은 정치적 경쟁자이자 동지였다. 군부세력과 맞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오랜 투쟁을 해왔던 두 사람이지만,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양김은 정치적으로 갈라섰다. YS는 DJ를 문병한 뒤 기자들에게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합과 화합”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신 사실상 마지막 메시지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김 전 대통령이) 2013년에 입원하셨는데 사실 말씀을 잘하진 못하셨다”며 “필담 식으로 글씨를 좀 쓰셨는데 그 때 남기신 말이 ‘통합과 화합’이었다”고 밝혔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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