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장] 南-北 대치 최고조, 민통선에 가다
‘일상의 정치’가 돼버린 최북단 끝 긴장감
  • 정찬대 기자
  • 16.02.1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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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조강을 적신다. 앞을 가린 짙은 안개는 남북 간 대치상황을 말해주듯 답답하다. 한강과 임진강 물줄기가 하나 되어 흐르는 조강, 그 건너편 북녘이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철조망에 가로막힌 DMZ(비무장지대)는 한 치의 길도 허락지 않으며 우리가 ‘분단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분단 70년, 서로에게 여전히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금단의 땅은 가깝고도 멀다. 서울에서 불과 40여km, 개성까지는 15km가 채 되지 않는다. 이곳 용강리(경기 김포 월곶면)에서 북방한계선까지 4km 남짓이다.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반세기 넘게 지켜만 보고 있다.

 

△용강리 민통선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군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현재 남북이 초긴장 상태에 놓이면서 경계근무도 한층 강화됐다. ⓒ커버리지(정찬대)

 

지난 12일 <커버리지>는 휴전선 최접경 지역인 용강리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 마을에 다녀왔다. 전날 개성공단 전면 폐쇄와 입주기업의 철수작업이 진행됐고, 정부는 개성공단 전력공급을 완전히 차단했다. 북한은 이 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 남북관계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으로 회귀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일 북한이 발사한 ‘광명성 4호’를 인공위성이 아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규정하고,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를 한반도에 도입하기로 공식화했다.

 

하지만 논란은 거세다. 전쟁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열강 앞에 협상력을 잃은 정부는 극단적 처방을 내놨고, ‘통일 대박’은 뒤로 밀렸다. 남북 경협의 마지막 끈이자, 평화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은 태동 16년 만에 폐쇄됐고, 남북 긴장상태는 최고조에 달했다.

 

취재진이 민통선을 찾은 날, 입춘이 지난 가랑비가 60년 넘게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땅을 적시고 있었다. 논두렁과 습지에 고인 물은 살얼음이 됐고, 살얼음에 부딪힌 빗소리가 용강리의 적막감을 더했다. 남도는 파릇파릇 봄날의 새순이 돋고 있지만, 이곳의 바람은 여전히 차고 날카로웠다.

 

△뿌연 안개에 휩싸인 민통선 최북단 지역. 멀리 두 명의 보초병이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이 보인다. 철조망 너머는 조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 구역부터 비무장지대(DMZ)로 분류된다. ⓒ커버리지(정찬대)

 

‘금 없는’ 휴전선, 조강을 바라보다

 

민통선은 삼엄한 군 경계태세를 보였다. 외부인의 접근은 통제됐고, 주위는 철저히 차단됐다. 지난달 6일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대한 제재 조치로 8일 재개된 우리 측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이후 경계는 한층 더 강화된 상태다. 취재진이 용강리 마을을 찾기 전 새벽에도 시끄러운 대북 방송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소음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민통선은 비무장지대로부터 5km 이내에 있는 지역으로 원주민 외에는 거주할 수 없고,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민통선 마을 북쪽 끝 지점, 이곳이 바로 남방 한계선이다. 그 한계선을 넘으면 정전과 함께 인간의 발길도 끊긴 비무장지대가 펼쳐진다.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각각 2km씩 물러나있는 폭 4km의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 이듬해인 1954년 남북 간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설정됐다.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면서도 한반도 내에 유일하게 무장이 해제된 곳이다. 분단의 현실과 통일의 필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평화의 또 다른 상징인 셈이다.

 

용강리 마을은 민통선 내 서부전선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북단 끝 끊겨진 곳에 다다르면 남과 북을 가르는 조강이 흐르고, 강심 한가운데 금 없는 휴전선이 지나간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6사단(일명 방호산 부대)이 처음 도하해 접안한 지역이 이곳이다. 이 때문에 용강리는 ‘제1호 해방구’가 됐다. 민통선 대부분 지역에 육군이 진지한 것과 달리 해병대 2사단이 이곳을 지키고 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목사가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던 중 생각에 잠겨있다. ⓒ커버리지(정찬대)

 

“개성공단 폐쇄는 자충수…정치-경제 분리해야”

 

현재 민통선은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터라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목사의 도움을 얻어 어렵게 검문소를 통과했다. 이적 목사는 ‘대북전단 살포 및 애기봉 등탑 반대 주민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를 지낸 반전평화운동가다. 2013년 11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학술 세미나에서 “애기봉 등탑 점등은 남측의 대북 심리전”이라고 발제한 것이 문제가 돼 압수수색(북한 동조혐의)을 받기도 했다.

 

애기봉 등탑 점화는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그리고 FM라디오 방송과 함께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으로 지목돼왔다. 진보진영에서는 “종교행사를 빗댄 평화 파괴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 목사는 “국제법상 심리전은 전투행위로 간주되고 있다”며 “애기봉 등탑은 종교의 탈을 쓴 평화 파괴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은 물론 남남갈등까지 벌어지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며 “새벽이고 뭐고 시도 때도 없이 켜놓은 대북 확성기 역시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전날 단행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해서도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야 한다. 정치가 아무리 요동쳐도 경제협력은 그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개성공단 폐쇄는 정부가 자충수를 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통선 내 서부전선 최북단에 위치한 용강리 마을. 현재 이곳에는 120여명의 주민이 50여 가구를 이루며 살고 있다. ⓒ커버리지(정찬대)

 

“농군밖에 없는 이곳에 포 쏘겠어?”

 

삼엄한 경계를 뚫고 나면 곧장 용강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뿌연 안개에 휩싸인 마을은 괴괴함이 감돌지만, 주민들 표정은 남북 긴장상태와 무관하게 밝다.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제 인이 박혀 무감각하다”고 했다. 한평생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한 긴장과 대치는 이들에게 어느새 ‘일상의 정치’가 돼버렸다.

 

마을경로당에 들어서니 20여명의 어르신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다. 이들의 표정에서 남북 대치상황이나 도발의 기운은 전혀 읽히지 않는다. 휴전선이 코앞이지만 전쟁의 그림자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정유현(남·74)씨는 “오늘 새벽에도 대북 방송이 나왔지만, 그러려니 한다”며 “남북 대치상황이 하도 자주 있다 보니 이제는 무덤덤하다”고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북한이 나이든 농군밖에 없는 여기에 설마하니 포를 쏘겠느냐”며 “도시보다 오히려 이곳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용강리 마을의 한 폐가. 나가는 길은 열려있지만,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은 민통선의 현 상황을 마을 곳곳의 폐가가 말해주고 있다. ⓒ커버리지(정찬대)

 

120여명의 주민이 50여 가구를 이루고 있는 용강리는 점점 비워지고 있다. 취재진이 마을을 둘러본 결과 곳곳에 빈집이 눈에 띄었다. 나가는 길은 열려있지만, 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민통선, 아니 남북이 처한 현 상황이 그렇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손이 안 탄 청정지역이다. 민통선 평야지대는 저어새를 비롯한 철새들의 최북단 월동지가 됐고, 봄이면 용강리 마을의 늪과 습지에 멸종위기식물인 매화마름이 군락을 이룬다.

 

분단의 한민족 닮은 ‘평화의 소’

 

조강 건너 북한 황해북도 판문군(옛 개풍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궂은 날씨 탓에 북녘 땅이 완전히 가려졌지만, 평소 개성 송악산까지 훤히 보인다. 송악산 너머에는 개성공단이 있다.

 

마을 인근에는 한강과 임진강을 교차하며 응시하는 애기봉(해발 155m)이 서있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번갈아가며 점령한 군사적 요충지다. 망루(전망대)에 오르면 눈앞 북녘 산하가 아련하다.

 

1954년 세워진 애기봉 등탑은 남북 긴장격화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성탄절에는 축하예배와 트리가 장식되고, 4월 초파일에는 법회와 각종 봉축행사가 열린다. 지난해 연말에는 좌우익 기독단체 간 협의로 점등 대신 평화기도회를 가져 남남 및 남북갈등이 일시적으로 봉합되기도 했다.

 

△멀리 철조망 건너편에 조강의 외로운 섬 ‘유도(留島)’가 있다. 다만, 취재진이 찾은 지난 12일은 짙은 안개로 조강 건너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도는 ‘평화의 소’ 일화가 담겨있는 섬이다. ⓒ커버리지(정찬대)

 

남과 북을 가르는 조강 사이에 ‘유도(留島)’라는 섬이 있다. 바로 비무장지대에 속한 작은 무인도다. 1996년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면서 북한의 황소 한 마리가 이곳 유도까지 떠내려 왔고, 이듬해 1월 해병대에 의해 구출된 황소는 ‘평화의 소’란 이름이 붙었다.

 

이후 평화통일과 민족화합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북제주군 한우 암소인 ‘통일 염원의 소’와 결혼했고, 첫 번째 수소 ‘평화 통일의 소’가 태어났다. 이 녀석은 어미 고향인 제주도로 보내져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의 현실을 상징한다. 북에서 넘어온 ‘평화의 소’는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며, 그의 자손인 ‘평화 통일의 소’는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안타깝게도 ‘평화의 소’는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2006년 자연사했다.

 

△마을노인당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용강리 주민들. 이들은 남북 긴장상태에 대해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제는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커버리지(정찬대)

 

불신의 날줄, 불안의 씨줄 위에 놓인 남북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북한은 이 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개성을 군사기지화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개성은 문산을 거쳐 서울까지 최단시간 내 돌파할 수 있는 이른바 ‘개성-문산 축선’으로 손꼽힌다. 공단이 들어서기 전 개성과 판문읍 봉동리 일대에는 북한군 2군단 소속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이 배치됐을 만큼 군사적 전진기지였다.

 

북한은 공단 조성 당시 이들 부대를 5~15km 후퇴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개성이 공단화되면서 안보 완충지대가 설정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남북 경협 이외에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지도 안 빨간 원이 용강리 민통선 마을이다. ⓒNAVER.COM

 

과거 남북은 ‘대립’의 날줄과 ‘교류’의 씨줄 위에서 군사적 긴장 관계를 풀어갔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등은 남북 간 신뢰구축의 대표적 씨앗이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는 ‘불신’의 날줄과 ‘불안’의 씨줄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개성공단 폐쇄에서 보듯이 양측이 강대강 대치로 맞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감은 최악의 상태로 내몰렸다.

 

“(남북이) 괜히 저 지랄해서 지금 분위기가 험악해진 거야, 어서 빨리 통일이 돼서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데, 뭐하는 건지….”

 

휴전선 최접경 지역 용강리 마을에서 만난 윤순덕(여·85)씨 얘기가 마지막 귓전을 때린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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