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종인의 ‘셀프공천’…새누리化 되는 더민주
“‘외통수’ 걸린 더민주…김종인에게 당 내줄 판”
  • 정유담 기자
  • 16.03.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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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사진=더불어민주당)

“노욕(老慾)이 과하면 노추(老醜)가 된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공천’에 대한 한 당직자의 비판이다. 당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중앙위원회에서는 이를 강하게 문제 삼으며 비례순번 확정을 위한 회의가 파행을 겪었다.

 

김 대표는 20일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전략공천 몫으로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를 비례대표 1번에, 자신을 2번에,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6번에 배정했다. 통상 여성이 비례 1번(홀수), 남성이 2번(짝수)에 배정되는 점을 감안할 때 김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남성 1호’에 올린 셈이다.

 

당 안팎에선 ‘셀프공천’ ‘노욕’ 등의 비토가 쏟아졌다. 일각에선 사퇴하라는 아우성까지 들렸다. 이들의 공통된 지적은 김 대표의 셀프공천이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간 당이 보여줬던 쇄신책이나 체질개선의 움직임도 색이 바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셀프공천’ 한방으로 진정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공천파행이 있기 전 기자와 만난 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비례 20번 밖으로 배정받는다면 그 진정성을 인정해 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20일 김 대표는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정했다.

 

더욱이 김 대표가 지목한 박경미 교수는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됐고, 최운열 교수는 ‘먹튀논란’의 론스타를 옹호한 글을 한 일간지에 기재해 논란이 됐다. 김 대표는 물론 공천을 관리해야할 주요 인사들은 ‘마이너(사소한)한 것’이라고 이를 일축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당이 점점 새누리 스러워진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한 당직자는 ‘당이 새누리화(化) 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슨 소리냐”면서도 “김 대표 체제 이후 의사결정이 일사분란하게 이뤄지는 측면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고 옹호했다.

 

“추호도 생각 없다”던 김종인…‘비례 2번’ 배정

 

김 대표는 현재 자신에 대한 ‘셀프공천’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이런 식이면 함께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다.

 

비례대표 파동으로 당무 거부에 들어간 그는 21일 국회 대신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사무실로 출근하는 도중 기자들과 만나 “나를 욕심 많은 노인네로 만들었다”며 “죽어도 못 참는다”고 격노했다.

 

김 대표는 “총선 이후 내가 딱 던져버리고 당을 나오면 당이 제대로 갈 것 같냐”고 반문한 뒤 “나는 응급 치료하는 의사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환자가 병 낫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노기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당을 추슬러서 수권 정당을 만들고, 이를 끌고 가기 위해선 의원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월 김 대표는 “내 나이가 77세다. 젊은이는 국회 가서 쪼그리고 앉아도 되지만, 난 곤욕스런 일”이라며 총선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또 2월 비례대표 관련 질문에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16일에는 “비례대표가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며 거듭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그랬던 김 대표는 ‘남성 1호’에 배정됐다.

 

김종인 vs 친노, 총선 이후 갈등 예고

 

김 대표 공천에 가장 큰 경계심을 보이는 쪽은 친노(친노무현) 진영이다. ‘한시적 대표’에 머물 것이란 당초 계산은 틀어졌고, 총선 이후에도 당을 핸들링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상황에서 친노를 위시한 비주류와의 신경전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2017년 대선이 실시되는 점을 감안할 때 대선후보 선정 과정에서 양측 간 적잖은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대표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 공천과 관련해 “특정인을 대선후보로 만드는 수단”이라며 “반민주적 패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 대표는 당에서도 우측(보수) 끝에 서있다. 친노는 비교적 좌측(진보)에 위치한다. 양 끝단에 있는 이들이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친노계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정청래, 이목희, 강기정 의원 등 상당수 강경파 의원들이 컷오프됐다. 여기에 김근태계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 수장인 최규성 의원도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미 새판짜기는 시작됐다. 이를 반영하듯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김종인계가 형성됐다는 말까지 들린다. 한 당직자는 “모든 계파가 와해될 지경”이라며 현 상황을 토로했다.

 

DJ와 비교한 金, “그런 식으론 정치 안 해”

 

김 대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3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12번을 받았던 점을 언급하며 지금의 사태를 꼬집기도 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과거 (비례대표) 12번을 달고 13대 국회 체험을 했다”며 “당시 ‘대통령 떨어지고 국회의원이라도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앞 번호는 못 받고, 12번을 받았기 때문에 평민당 여러분이 안 찍어주면 김대중이 국회도 못가니 표를 달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식으로 정치 안한다. 솔직하게 하면 하는 거고, 안하면 안하는 것”이라며 “비례 2번 달고 국회의원 하나, 12번 달고 국회의원 하나 국회의원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동교동계로 불리는 국민의당 김정현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내고 반발했다. 그는 “당원과 국민을 무섭게 알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며 “국보위 전력에 뇌물수수까지, 더민주당을 상징하는 비례 2번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같은 당 김희경 대변인도 “김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욕하며 자신의 구태행보를 모면하려 했다”며 “김 전 대통령이 헌신의 자세로 비례대표 후순위를 자청해 받은 것과 김 대표의 셀프공천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들었다.

 

‘김종인 딜레마’, 더민주 ‘어찌할꼬…'

 

문제는 김 대표의 ‘벼랑 끝 전술’에 당이 전혀 손을 쓸 수 없다는데 있다. 실제 더민주당은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하는 대신, ‘김종인표 공천’ 대부분을 수용하는 형식의 중재안을 내놨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안 받겠다”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더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당은 지금 외통수에 걸린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기조로 가면 총선 참패는 불 보듯 뻔하다”며 "김 대표에게 당을 내주거나,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나라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김 대표가 당을 나간다면 더민주는 정말 이도저도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외부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태”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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