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슈] ‘문재인 운명’ 쥔 김종인의 선택
세력화 나선 金… 토사구팽 시키려는 文
  • 정유담 기자
  • 16.04.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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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오만한’ 정치에 대한 분노가 표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현실화됐다. 수도권과 영남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민심의 철퇴’를 가했고, 호남은 제1야당에 이전에 없던 메스를 들이대 제 살을 도려냈다. ‘만년 2등’ 더민주는 수도권에서 압승하며 1당이 됐지만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에서는 고작 3석을 차지하며 참패했다. 안방을 내준 더민주로선 이러한 결과가 무엇보다 뼈아프다. 호남 참패의 시선은 어느새 문재인 전 대표에게 향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총선 전 광주행을 택했다. 더욱이 이곳에서 ‘정계은퇴’의 배수진까지 친 터다. 원내 1당이 된 더민주는 웃었지만, 문재인은 웃을 수 없었다. <편집자 주>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이 열린 가운데 김종인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더민주 지도부 및 당직자들은 ‘문제는 경제다. 정답은 정권교체’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사진=더불어민주당)

‘힘 실린’ 김종인, 문재인 어찌할꼬?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에 등극하면서 ‘셀프공천’ 파동으로 위축됐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입지는 다시 강화됐다. 총선 뒤 곧바로 와해될 것으로 여겼던 비대위 역시 한동안 유지시킬 계획이다. 실제 김 대표는 15일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비대위원을 임명, 2기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해 진영 정성호 김현미 의원 등과 함께 충청의 양승조, 호남의 이개호 의원을 배치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친노무현) 인사와 운동권은 철저히 배제됐고, 합리적 온건·중도 성향 인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의 친정체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전당대회 날짜는 비대위에서 정해질 것”이라며 “현재 6~7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총선 승리를 발판 삼은 김 대표는 2기 비대위를 통해 당내 기반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있을 전당대회와 그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이를 위해 내부 장악력 및 자체 세력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전 대표는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김종인 지도부는 임시지도부”라고 규정했다. 그는 김 대표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스님”이라고 표현하며 “현 체제는 선거를 지휘할 역할을 하는 비상대책기구다. 총선이 끝난 뒤 새 지도부를 선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김 대표에 대한 견제로 해석됐다. 실제 한 당직자는 “김 대표의 역할이 끝났으니 이제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문 전 대표 발언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2기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도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 대표에게 힘이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의 당내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총선에 불출마한 문 전 대표는 이제 원외 인사다. 대선을 위한 결단이었다지만 원내 장악력은 전만 못할 수밖에 없다. 반면, 총선 승리로 입지가 강화된 김 대표는 셀프공천으로 ‘비례 2번’을 낙점받아 여전히 당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칼자루는 김 대표가 쥐고 있는 셈이다.

 

“호남에서 지지 거둔다면…” 文의 선택

 

총선 승리의 기쁨도 잠시 당내에선 문 전 대표의 ‘정계은퇴’ 발언 책임론을 두고 홍역을 예고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8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호남에서 지지를 철회한다면 대선 불출마는 물론 정계에서도 은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호남 지지율이 국민의당과 두 배가량 격차를 보이며 더민주 후보가 약세인 상황에서 정치적 한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반문(반문재인) 정서’는 호남 저변에 뿌리깊게 박혀 있고, 호남은 그를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았다. 총 28개의 호남 의석 가운데 국민의당은 무려 23석을 차지했다. 광주에서는 8석 모두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호남 맹주 자리를 놓고 싸운 더민주는 고작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도 이 지역에서 2석을 차지했다.

호남 참패의 시선은 문 전 대표에게로 향했다. 문 전 대표는 14일 호남 참패에 대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물음에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해 또 한 번 논란을 자처했다.문 전 대표 측은 “호남 분위기를 뒤집진 못했지만, 더민주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결집해 수도권과 영남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며 진화에 나섰고, 당 관계자는 “호남에선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하지 않았느냐. 그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김 대표는 그런 문 전 대표를 압박했다. 14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원유세가 지역 민심을 달래는 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또 그의 정계은퇴와 관련해 “본인 생각이 어떠냐에 달려 있는 거지, 제3자인 제가 이렇고 저렇고 얘기할 순 없다”며 어쨌든 “문 전 대표가 배수진을 친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나타난 상황이란 게 별로…”라고 지적했다.

 

‘차르’ 김종인보다 ‘만만한’ 문재인이…”

 

김 대표 발언에 반박이라도 하듯 이종걸 원내대표는 15일 라디오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사즉생의 각오로 한 표현이다. 호남에 가서 그런 각오의 말을 보여준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백의종군하는 장수의 마음에서 한 발언으로 장수의 마음을 훔치려 하면 안된다”고 문 전 대표를 옹호했다.

이 원내대표의 발언은 자당의 유력 대권후보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수도권 압승에 대한 그의 공(功)을 감안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차르’(러시아 전제군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김종인 대표 체제보다는 친노 체제가 낫다는 포석에 따른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당 핵심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문 전 대표는 흔들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반면, 김 대표는 전혀 그럴 틈이 없다”며 “확실히 김종인보다는 문재인이 낫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 원내대표의 문 전 대표 쉴드(보호막)는 결국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기자와 통화에서 “총선이 끝났으니 이제 김종인 대표에게 그만 내려오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며 “벌써부터 그런 분위기가 읽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 교수는 “김 대표가 총선 승리로 입지를 강화하기는 했지만 한쪽에선 ‘넌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당내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시작점은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당 관계자도 “전당대회 때 보면 김 대표가 어떻게 토사구팽 당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김 대표가 지금처럼 당을 컨트롤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친노냐, 비주류냐 이런 것을 떠나서 김종인 체제보다는 기존의 우리당 인사가 낫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시나 대안은 손학규? 측근 줄줄이 입성

 

‘노정객’ 김종인 대표의 내공도 결코 만만치 않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에 대해 “대통령감이 아니다”고 했다. 반면, 손학규 전 고문에 대해선 “유력한 대권후보”라며 치켜세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 대표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이 아닌 손학규를 전략적으로 택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친노를 제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손 전 고문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끝내 뿌리쳤다. 다만, 측근 인사에 대해선 적극적인 선거지원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이들 대부분이 생환했다. 더민주 내 손학규계 당선자는 양승조 조정식 이찬열 이춘석 의원을 비롯해 김민기 이개호 전현희 전혜숙 강훈식 고용진 김병욱 박찬대 어기구 임종성 등이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이 가운데 양승조 의원은 2기 비대위에 포함돼 있다. 손학규계 핵심 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손학규계) 좋은 분들이 후보가 돼 당선됐다. 이것이 손 전 고문의 지지효과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은 여전히 전남 강진에 칩거 중이다. 손 전 고문 측은 “총선이 이제 막 끝났으니 지금은 이분들이 당을 잘 이끌어가야 한다”며 “손 전 고문이 당장 움직이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변에서 기대하고 지지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다”며 ‘때’를 기다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인사 역시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내년이 대선이니까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광주지역 한 일간지 기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문 전 대표가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이미 지지를 철회한 것 아니냐”며 “문재인으로는 다음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지역민들의 냉엄한 평가가 이번 총선 결과로 나온 것”이라고 ‘호남 패인’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서도 드러났듯 손 전 고문에 대한 몸값은 대선을 앞두고 더욱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지역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호남에서 손 전 고문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높다”고 언급한 뒤 “수도권(일부 영남지역 포함)에서 승리한 더민주와 호남 민심이 합쳐진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손 전 고문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는 “문 전 대표로는 어차피 안 된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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