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박계 최후의 한 수, 여권發 정계 개편 예고
“더 이상 할 게 없다”…‘내년 4월’ 분수령
  • 정유담 기자
  • 16.05.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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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분위기가 심상찮다. ‘관리형 비대위’ 구성에 이어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하면서 당 안팎에선 ‘도로 친박당’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부터 시작해 대외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친박은 주요 사안마다 의견을 관철시키고 있다. 반면, 구심점을 찾지 못한 비박은 우왕좌왕한 채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저 ‘혁신 비대위’를 요구할 뿐이다. 비박계가 지리멸렬하는 동안 물밑에서 우위의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친박은 기민하게 ‘사당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일부 비박계 사이에선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좌)와 새누리당을 탈당한 무소속 유승민 의원.(사진=새누리당)

‘도로 친박’이다. 물밑에서 진행된 세 결집은 어느새 사당화 작업으로 표면화됐고, 당은 빠르게 친박 체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총선 참패 후 잠잠했던 계파 갈등이 전면화 되면서 일각에선 새누리발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등 분열 움직임도 심상찮다. 일부 비박계는 ‘3지대’ 가능성을 언급하며 분당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 이후 지도부 공백 사태를 메우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혁신위원회(혁신위)를 구성함으로써 당을 ‘투 트랙’ 체제로 전환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첨예하게 맞섰던 비대위 성격은 ‘관리형’으로 매듭지었다. 여기에 ‘범친박’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하면서 친박의 운신 폭은 더욱 넓어졌다.

 

비박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비박계로 구성된 당 혁신모임 소속 하태경 의원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으며, 같은 모임의 김영우 의원은 “희망이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특히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고 따로 혁신위가 구성된다는 것은 당 혁신을 최우선 과제가 아닌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라며 현 체제를 “계파 이기주의”라고 꼬집었다.

 

비박계 홍일표 의원도 “관리형 비대위는 정말 실망스럽다”고 평가절하했다. 이어 “혁신위가 용두사미가 될 경우 새누리당은 정말 망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투 트랙 체제는 중진의원들의 대책적인 의견이었다”며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방안 중 하나”라고 치켜세웠다. 아울러 “계파를 떠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당 체제 구성에 앞서 여론 수렴의 절차를 가졌다. 122명 당선자로부터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이를 적극 반영한 안이다. 당선자 중 절반 이상인 70여명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수적으로 우세한 친박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친박의 시나리오대로 들어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설문조사 항목은 비대위 형식과 전당대회 시기가 정해져 있어 선택의 폭을 제한했고, 기타의견을 통해 자유 발언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설문지 하단에 당선자 이름을 기명토록 함으로써 무기명 원칙을 저해했다.

 

“당대표에 맡겨라”…혁신안 선별 수용

 

당헌 당규상 혁신위가 당 지도부에 쇄신안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차기 지도부가 쇄신안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권한 없는 ‘허수아비’인 셈이다. 혁신위 구성 전부터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외부 혁신위원장 영입 역시 정 원내대표의 추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혁신위원장이 공동비대위원장을 겸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비박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당내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혁신위에서 성안된 혁신안은 9월 정기국회 이전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여과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분명한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민경욱 대변인도 ‘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가 혁신안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혁신위에 전권을 줘서 (혁신안을) 만들 텐데,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쇄신안이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친박의 입장은 원내지도부의 생각과 다른 듯하다. 일찌감치 당권 도전에 나선 ‘진박(진실한 친박)’ 이정현 의원은 12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당대표가 될 경우 혁신위에서 만든 쇄신안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뭐 내용이 좋은 게 있다면 받아들여야 하겠죠”라며 떨떠름한 표정을 내보였다. 이어 “혁신위가 뭘 가지고 와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인명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는 “새누리당이 개혁을 안 하겠다는 뜻”이라며 “이대로는 도로 총선에서 심판받은 ‘친박당’이 되고 말 것”이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인 대표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원내지도부 구성만 봐도 친박색은 확연히 드러난다. 정 원내대표는 원내대변인에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경욱 당선자를 임명했다. 또 원내부대표에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이양수 당선자,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 비서실장 출신의 강석진 당선자, 최경환 의원 대구고 후배 이만희 당선자를 각각 선임했다. 원내부대표단 가운데 비박계로 분류되는 인물은 오신환 김성원 당선자가 유일하다.

 

김무성-남경필 회동…‘비박연대’ 모색

 

친박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비박의 구심점은 전무한 상태다.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무성 전 대표는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데다 낙동강 벨트까지 잃어버리면서 차기 대권후보로서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그는 여전히 숨고르기 중이다.

 

그런데 최근 김 전 대표가 당내 소장파 핵심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비박계인데다 유력 잠룡군이란 점에서 정치적 연대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 주변에선 총선 결과와 전당대회, 그리고 내년 대선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오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기에 김 전 대표는 측근인 권성동 의원과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등 당 안팎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정치 재개를 위한 기지개를 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비박계 또 다른 구심점인 무소속 유승민 의원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정 원내대표는 탈당파들의 복당 가능성을 전당대회 이후로 못 박았다. 당 상임고문들이 “공천이 잘못돼서 그렇게 된 건데”라며 복당을 촉구했지만, 정 원내대표는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탈당파 중에는 비박계의 구심점이자 당권에 도전할 수 있는 유 의원이 포함돼 있다. 결국 ‘전당대회 이후’는 당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내년 4월이 기점…새누리 망한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움직임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정두언 의원 등 옛 친이계 인사들이 ‘제3지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정 원내대표가 정 의장에게 거듭 복당을 요청한 것도 제3지대가 당 분열의 또 다른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 의장은 “이미 사당화된 새누리당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 의장은 이달 말 싱크탱크인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여기에는 박형준 사무총장이 원장으로서 운영을 진두지휘한다.

 

정두언 의원은 11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야당발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해 “내년 4월 재·보선이 기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수도권부터 흔들릴 것”이라며 “대권 국면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여러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도 12일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새누리당은 반드시 망한다”고 단언했다. 전 변호사는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를 위해 탄생했고,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과거 노무현 정부의 열린우리당처럼 새누리당도 박근혜 정부가 끝나면 수명이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media@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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