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더민주 全大] 4인4색 아킬레스건은 ‘이것!’
“분칠한 후보들…자기다움의 결여”
  • 정찬대 기자
  • 16.07.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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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다르크에서 마타하리…햄릿에서 돈키호테까지

-반성 없는 486…분당의 빌미 ‘김상곤 혁신안’
 

△좌부터 추미애 의원, 송영길 의원,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이종걸 의원.(사진=더불어민주당)


막은 올랐다. 하지만 흥행은 없다. 존재감 없는 야당의 간판을 자임했지만 ‘자기다움’은 없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심(文心·문재인 전 대표 의중)’에 목매는 세 후보와 대표성 결여의 비주류 후보가 나섰다. 4파전, ‘친문3-비문1’ 구도다.
 
각각의 개성은 뚜렷하다. ‘DJ의 정치적 딸’ 추미애 의원이 유력 여성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깃발을 들었다. 2003년 민주당 분당 당시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한 뒤 탄핵에 찬성했고, 2004년 4월 민주당 선대위원장 시절 ‘노무현 탄핵’에 반성하는 의미로 광주 금남로에서 5.18국립묘지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도 이즈음 생겨났다. 백년전쟁 후기 위기의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처럼 분당과 탄핵의 후폭풍에서 민주당을 구할 성녀(聖女)로 부각됐다. 


호남 민심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매서웠다. 결국 추 의원은 당을 구하지 못했고, 그 역시도 탄핵 역풍을 이기지 못한 채 낙마했다. 하지만 모든 총대를 멘 추 의원에게 이는 호남 정치(민주당) 계보를 잇는 밑거름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못 지킨 분이…”
 
‘노무현 탄핵’은 꼬리표처럼 추 의원을 따라다녔다. 정치적 역량이나 진정성과 별개로 ‘한나라당 출신’ 딱지가 두껍게 앉은 손학규 전 상임고문처럼 친노 일색인 더민주 내에서 그는 언제나 ‘탄핵의 원흉’이다. 여기에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엄청난 비판의 후폭풍을 몰고 왔다. 추 의원은 당시 ‘소신’이라고 밝혔지만, 야당 상임위원장이 회의장 문까지 걸어 잠군 채 한나라당과 야합한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가 곤란하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독특한 날치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추 의원이 ‘예측불허’라는 세간의 비판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다. 때문에 일각에선 ‘추다르크’가 아닌 ‘마타하리’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우리 편 인줄 알았더니 결국 상대 편’이었단 얘기다. 
 
추 의원은 ‘맞서고 지키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더민주 유력 대권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를 지키고, 박근혜 정권에 맞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과거 당이 후보를 돕지 못하고 흔들었던 전례가 절대 반복돼선 안 된다. 대선후보를 지켜줄 깊은 신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키지 못한 분이 대선후보가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이냐. 그간의 행실을 보면 결국 자기 삶을 부정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니 못 믿는 것이다”
 
과실만 따먹고 반성은 없는 86그룹
 
추 의원과 함께 유력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 그는 86그룹의 맏형격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운동권 후배들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는 친노 운동권 세력도 포함돼 있다. 인천시장을 역임하며 여의도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그로선 적잖은 우군이다. 여기에 호남 출신이란 점도 주요 이력에 한줄 보태고 있다.
 
더민주 내에서 호남출신이자 운동권은 성골로 분류된다. 둘 중 하나면 진골, 이마저도 안 되면 육두품 이하다. 그런 점에서 송 의원은 황실귀족인 성골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그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호남출신이라고는 하나 호남은 그를 출향인사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호남에 기여한 바도 뚜렷이 없다. 희생은 없고, 그저 아쉬울 때만 ‘호남’이다.
 
‘86그룹’이 기성 정치권에 흡수된 지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역사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그간 무엇을 했을까. 기성 정치권의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이들 역시도 이제는 기성정치화 됐다. ‘청년 정치인’ 양성은 나몰라한 채 기득권의 과실을 따먹고 있다.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는 여전히 ‘기성 정치인’ 탓이다. 
 
내년이면 87년 체제 30년이다.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관심 있었던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장강(長江·양쯔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역사는 전진했고, 실존적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우리 정치사는 여전히 뒷걸음질 치며 과거를 답습 중이다.
 
‘김상곤 혁신안’, 무엇을 만들었나
 
의지만 있고 현실감은 부족했다. 김상곤 혁신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5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혁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다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가뜩이나 ‘막말 파동’ 등으로 지도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당이 적잖은 혼란에 휩싸였다. 당은 갈피를 못 잡았고, 통제 밖 권한은 여러 생채기를 남겼다. 
 
1차부터 11차까지 이어진 혁신안은 고질병처럼 퍼져있던 분열이 표면화되는 기폭제가 됐다. 특히 제5차 혁신안으로 제시된 권력별 비례제 도입과 국회의원 정수 증대 문제는 당 혁신위의 권한을 벗어난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물론 국민적인 반(反)정치 정서를 자극하는데도 한몫했다.
 
주승용 당시 최고위원(현 국민의당 비대위원)은 “혁신위에 헌법까지 바꿀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며 김 전 위원장 면전에 당 혁신안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주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호남지역 의원들이 의기투합했다. 여기에 안철수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반문재인 전선이 구축됐다. 그렇게 갈등은 깊어졌고 결국 당은 쪼개졌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같이 말했다.
 
“김상곤 전 위원장은 완장만 찼지 한 게 없다. 혁신위를 되레 코미디화 했다. 결국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분당한 것도 혁신위가 빌미가 됐다. 당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제대로 된 혁신안을 만들어냈어야 했는데, 김 전 위원장과 문 전 대표는 결과적으로 그걸 못했다. 야당을 분열시킨 장본인 중 한명인 셈이다”
 
‘돈키호테’ 이종걸, 풍차에 돌진하나
 
장고 끝에 이종걸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당 지도부가 주류 일색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세 후보 모두 친노·친문의 지원을 받고 있다. 비주류의 정체성을 내세운 도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지 않다. 더욱이 이 의원은 비주류 내 교통정리도 안 돼 있는 상태다. 
 
박영선 의원은 “전당대회 룰을 정한 비대위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라며 꼬집었고, 안민석 의원은 “비주류의 대표성을 갖고 출마하면 흥행은 되겠지만, 진정된 계파갈등이 다시금 불거질 수 있다”고 이 의원 출마를 만류했다. 
 
여기에 김종인 대표는 “지금 나가서 승산이 있겠나.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라”며 이 의원의 비대위원직 사표를 반려했다. 전당대회 컷오프 기준인 3등 안에도 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출마 결정을 유보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전문가는 이 의원에 대해 “햄릿인줄 알았는데, 돈키호테”라고 평가했다. 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과 망상적 사고에 사로잡힌 돈키호테에 빗댄 설명이다.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의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했듯 고뇌적 생각에 갇혀 살던 햄릿과 저돌적이고 엉뚱한 행동만 일삼던 돈키호테를 극단적 인간의 한 유형으로 설명한 것이다. 
 
뛰어난 자각력과 통찰력을 가진 줄 알았던 이 의원이 결국 저돌적인 이상주의자란 주장이다. 목표가 다소 허황되고 불분명한 경우에도 돈키호테는 주저하지 않는다. 당권 도전에 나선 지금의 이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론 김 의원의 패배(특히 컷오프될 경우)는 온전히 비주류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차피 차악 후보 뽑는 선거”
 
당권 도전에 나선 후보들은 ‘자기다움’이 결여됐다. 모두가 ‘문(文) 고리’만 잡는데 혈안이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13총선 당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을 외친 이들을 하나같이 비아냥대더니 결국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더민주는 현재 ‘연고(緣故) 없는 낭인’ 신세다. 국민의당에 안방에 내준 것은 두고두고 뼈아프다. 어떻게든 호남 지지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일시적이라고 애써 위안을 삼아보지만 대선 전까지 상황 정리를 마쳐야 한다. 호남의 선택은 야권의 대선후보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다. 그런 점에서 전당대회는 내년 대선을 위한 전초전 성격에 가깝다.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간판을 내세워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각 후보들은 손익계산만 열중이다.
 
더민주 한 대의원은 “분장만 하고 있다. 화장을 두껍게 한 채 표정관리만 하고 있다”며 “자기다움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자기 철학과 가치를 샤우팅하듯 외쳐도 될까 말까인데, 다들 표 계산만 하고 있다는 질책이다. 이어 “이번 전대는 좋은 놈이 아닌 덜 나쁜 놈,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며 “차선의 후보를 택하는데 열중하겠다”고 말했다. 누가되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자조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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