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영란법’, 이번에도 국회는 ‘꼼수입법’
책임주의 방기한 ‘졸속처리’…곳곳에 ‘구멍’
  • 정유담 기자
  • 15.03.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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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진통 끝에 ‘김영란법’을 통과시켰지만, 과잉입법 논란 및 위헌 가능성이 제기돼 향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사진출처=SBS 자료화면 캡처)

우여곡절 끝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재석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 226표, 반대 4표, 기권 17표로 관련 법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대상자는 국회, 정부출자 공공기관, 공공유관단체, 국공립학교 등 공직자뿐 아니라 언론인·사립교원 등 민간영역 종사자까지 광범위하다. 또 국회 정무위원회 안에서 삭제돼 논란이 된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 임원들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추가함으로써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영란법은 직무와 관계없이 1회 100만원(연 3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에만 금품가액의 2~5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했다.

가족 범위 대상자는 애초 ‘민법상 가족’(배우자, 직계 혈족,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에서, 과잉 입법 논란이 일자 ‘배우자’로 한정했다.

자녀나 형제자매 등 다른 직계 가족이나 친인척들의 우회적 금품수수가 가능해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적용범위가 광범위해 현재 300여만 명 가량이 김영란법에 적용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 전반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일단 법안통과 후 수정?…졸속·무책임한 입법부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막아 공직자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높이는 강력한 법안이란 점에서 기대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위헌소지와 과잉입법 논란은 해결되지 않은 채 ‘반쪽짜리’ 법안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향후 대통령령이나 개정안 형태의 보완입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언론자유 침해 논란과 수사기관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상황이 이러니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차라리 법안명만 통과시키고 내용은 추후 합의하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본회의 표결에 앞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김영란법은 문제투성이에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며 “법사위원장으로서 자괴감이 든다”고 밝혔다. 또 “법치주의에 반하고, 문제가 많음을 알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저 자신도 반성할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법안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에 미비성이 있음을 알고도 찬성하려니 양심에 조금…(걸린다)”며 아쉬움을 표했으며,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면서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약속을 지키는 것도 정치적 행위”라고 애써 위안을 삼았다.

정치권은 김영란법이 다소 문제가 있지만, 2월 국회에서 통과하기로 약속한 만큼 일단 법안통과부터 시킨 뒤 개정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문제점을 알고도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쇄도하고 있다.

더욱이 여야는 정부 원안에 없던 사립교원과 언론인 등 민간부문을 공공성을 이유로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면서도 시민단체 등 여타 직군은 제외시켰으며, 여기에 사립학교 교사는 적용 대상이지만, 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 임원이 빠진 것이 드러나면서 법사위가 부랴부랴 관련 내용을 추가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졸속입법이란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국민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법안을 제정하면서 일단 통과하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입법부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며 책임주의를 방기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말 불거진 연말정산 파동이 잘 말해준다.

양당이 세법개정안에 합의하고, 여야 의원 모두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지만,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새누리당은 그제야 ‘보완대책 마련 후 소급적용’이란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법의 본 취지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빠져나갈 구멍’ 만든 국회, 곳곳에 ‘예외조항’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청탁이나 로비·접대 등 우리 사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 주목표다. 하지만 대상에 포함된 국회는 곳곳에 예외조항을 숨겨놓고 있어 벌써부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 5조 2항에 따르면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건의하는 행위’에 대해선 이 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과 시장·군수·구청장 등 광역·기초단체장을 포함해 각 정당 소속 사무처 당직자, 시민사회단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정부안을 수정한 정무위 측에서는 ‘민원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이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

결국, A라는 국회의원이 법안개정 및 폐지 등을 위해 금품수수 등 입법로비를 받았다고 가정할 때, 적어도 ‘공익적인 목적’이란 테두리 안에서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야는 또 국회의원의 특혜성 정치자금 조달 역시 관련법에서 제외시켰다. 국회 스스로 정치후원금과 출판기념회 등을 사각지대로 만든 것이다.

출판기념회를 통한 불법성 정치자금 조달은 그간 계속해서 지적돼온 문제였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논란이 일자 정당 차원에서 출판기념회를 하지말자는 결의를 했지만, 법적구속력은 전혀 없는 상태다.

이밖에도 여야는 ‘김영란법’ 시행일 및 처벌조항 적용 시점을 법 공포 후 1년 6개월 뒤로 정했다. 법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법안 내용을 정확히 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여기에도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초 원안에는 유예기간이 1년이었지만, 여야 협상 과정에서 6개월 더 늘어 내년 9월부터 법이 시행된다. 2016년 4월13일 치러지는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직 19대 국회의원은 자연스레 김영란법 적용에서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 놓은 셈이 됐다.

 

커버리지 정유담 기자(new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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