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헌법재판소와 정치적 함의
역사의 반동과 퇴행, 그리고 과거 회귀
  • 송종민 시민기자
  • 15.06.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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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우리는 대통령 탄핵심판과 행정수도 이전 위헌 관련 사태를 지켜보며 구름 위에 떠 있는 귀족 판사들의 영민함과 절대 권위의 엄숙함 대신,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번뇌하는 민주주의라는 시끄럽고 번잡한 동네에서 예외의 존재가 될 수 없는, 실체적 개체로서의 헌법재판소를 만나게 됐다.

 

87년 6월 항쟁의 열매 중 하나인 헌법 최고의 사법기관이라는 그것은 그렇게 구름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통합진보당 해산사태(2014년 12월)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화 판결(2015년 5월) 문제로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국내 법규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관한 분쟁이나 해석을 사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재판소로, 정치적 파급효과가 큰 헌법적 분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헌법을 최종적으로 유권해석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일반 법원과 차이를 보인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위 자체로도 최고의 사법기관이지만 그 존재 자체가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법리 논쟁에 따른 결정만을 중심에 놓고 헌재의 판결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때문에 시대상황과 국제기준, 국민의 요구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원리적·교리적 법리 논쟁에 매몰돼 특정 정치세력의 눈치를 보며,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을 할 경우 헌재가 가지는 고유의 ‘유권해석’ 기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종국엔 그 사회의 수구적 회귀만이 부산물로 남게 된다.

 

2004년의 기억, 탄핵사태와 행정수도 위헌 논란

 

헌재판결의 부작용은 2004년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헌재는 당시 판결문에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공정한 선거가 실시될 수 있도록 총괄·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당연히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제9조의 ‘공무원’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공무원으로서의 중립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나친 원리주의적 판결이며, 축소지향적 해석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당시 판결이 탄핵소추의 가장 큰 발단이 된 사안이었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현행 공직선거법의 해석을 헌재가 좀 더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하는 것이 본래 입법 당시의 취지와 헌법 실현의 기능에 합치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할 때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수월해질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여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냉정히 따져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 선거의 기본원리임을 고려할 때 공직선거법은 이러한 기본적 행위를 국가 최고지도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규제하려 하고 있다. 물론 과거 문제시 됐던 관권선거와는 또 다른 문제다. ‘단순한 지지’와 ‘불법선거’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립이라는 단어가 있는 그대로의 기계적 중립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의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중립을 요구하고 입과 발을 묶는 식의 요식행위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좀 더 유연한 중립을 적용하자는 얘기다. 즉, 선거에 명백하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규제해야지,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인 선거의 원리를 막아선 안 된다는 의미다.

 

결국, 헌재의 판결은 예전부터 비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힌 지도자의 비상식적이고 음성적인 정치행위를 주도한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의 눈초리가 두려웠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비록 탄핵은 부결됐지만 명백한 기각이 아닌 양비론적인 자세를 취한 두루뭉술한 기각을 선고한 것은 정치적 입장을 과도하게 고려한 일종의 직권남용적 성격이 짙다고 보여 진다. 경제파탄이나 측근비리 사건과 달리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에 대한 제한적 해석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관습헌법’이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행정수도 위헌판결도 마찬가지다. 태생적·종속적·암묵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동의하지만, 우리나라 수도가 ‘관습적’으로 서울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헌법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 국민의 상식선에서 이해 가능하고 수용돼야 함을 전제로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성문법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관습법을 국가 중대사의 기준 잣대로 사용하는 것 또한 분명 유쾌하지 않은 하나의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애초에 위헌 판결을 내려놓고 그 법적·논리적 입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과거의 경국대전을 끌어온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관인 사법기관에서 나온 판결이기 때문에 정치적 이유로 보여질 뿐이라면 과도한 망상일까?

 

헌재의 정치적 결정, 재량권의 일탈? 남용?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헌재도 과거와 비슷한 판결 양태를 보이는듯하다. 공안출신의 헌재소장과 보수성향 일색의 헌법재판관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와 올해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판결을 보면 두 사건은 해당 법리를 떠나 정치적으로 매우 흡사해 보인다. 8:1의 찬반, 결과물도 그렇고 유일한 소수의견 또한 김이수 재판관이다.

 

먼저 통진당 해산은 헌재가 그 어떤 기관보다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입증했다. 근거규정이 된 헌법 제8조 4항을 보자.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이 조항은 국가권력이 자의적 판단으로 위헌이라 여겨지는 정당을 강제적으로 해산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 정당을 해산시키려면 헌법이 규정한 요건을 엄격히 갖추어야함을 명시한 보호조항으로 봐야한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유수의 선진국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우리나라의 학계 다수설은 그러하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내란 관련 문제가 정당해산의 가장 큰 사유로 보인다. 중앙위원회의 폭력사태나 특정 지역구내에서의 여론조작 및 불법투표와 같은 당내 비리에서 자유로울 정당이 국내 전무하다는 것쯤은 헌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이러한 사건이 불거지면 언제나 개인적인 일로 치부됐지만, 통합진보당은 아니었다.

 

내란 관련 또한 실체적인 진실이 얼마나 규명되었는지 의문이다. 지지율 한자리수의 정당에서 한 국회의원이 비록 내란을 선동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한 개인의 정치적 일탈이나 불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 그가 소속된 집단 자체를 강제적으로 해산할 명분은 되지 못하다는 의미다.

 

종북논란 또한 정치적 논쟁만 있을 뿐 아직 법리적으로 명확한 개념 자체가 정립돼 있지 않다. 개인 혹은 그를 따르는 소수의 무리를 그들이 속한 정치결사체와 동의어로 판단한 그 엄청난 무지막지함과 판단력이 법관의 양심의 따른 것이었다면,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적 소양을 갖추었는지 의심해 봐야하고, 혹여 특정 정치세력의 눈치를 살핀 것이라면 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헌법재판소 스스로 그 정신을 내팽개친 꼴이 된다.

 

통진당 해산 사태 이후 5개월여 만에 발생한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 또한 앞서 설명한 내용과 궤를 같이 한다. 핵심 쟁점이 된 현직 교원만 교원노조에 가입하도록 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헌재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헌재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해직교원과 교사자격을 취득했더라도 임용 전이거나 구직 중인 사람은 전교조에 가입할 수 없다. 기간제 교원도 계약기간 동안에만 가입이 허용되고, 계약이 만료되면 전교조에서 탈퇴해야 한다. 전체 조합원 6만여명 중 해직 교원은 9명에 불과한데, 이 9명 때문에 노조의 주체성과 자주성이 훼손된다는 것은 심히 부당한 논리다.

 

노조 조합원의 자격과 기준은 철저히 노조가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전교조 역시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인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헌재 판결은 전교조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한 채 특정 법리만을 교조적으로 해석한 자가당착적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자주적으로 정한 조합원의 자격을 노조의 자주성 운운하며 강제로 내쫓는 것은 해괴하기까지 했다.

 

다만 헌재는 해직교원을 정당한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실만으로 이미 적법하게 활동 중인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항상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체 조합원의 0.015%에 불과한 해직 교원의 존재가 전교조 전체의 노조 자격을 박탈시킬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헌재도 인정한 셈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해직자들에게 노조원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법률 조항은 결사의 자유 원칙과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것”이라며 교원노조법 2조를 개정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전 세계 172개국 401개 교원단체가 가입돼 3천만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국제교원노조연맹(Education International)은 헌재 판결에 앞서 “국제 노동기준을 위반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노조 등록 취소 결정은 무효화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다.

 

헌재는 그러나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항상 법외노조는 아니다’고 결정했다. 논란을 종결지어야할 최고의 사법기관이 시대요구와 국제적 권고사항을 묵살함으로써 일반 법원에 그 권한을 미룬 교묘한 정치적 물타기를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합헌 결정을 통해 ‘법외노조 판단의 근거와 명분은 줬으니, 그 다음은 법원 니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전교조는 앞으로 고등법원과 행정관청 사이에서 지루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헌재는 사태해결에 오히려 논란만 가중시킨 공적을 안고, 치고 빠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법적 안정성과 합리적 보수, 그리고 과거 회귀

 

현재 헌재는 높은 위상을 누리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정치권으로 대표되는 의회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행정권력의 비효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어진 탓이기도 하다. 여기에 최고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수직적 기대 또한 반영돼 있다. 이것은 비단, 헌재의 기능 자체가 다른 여타 기관에 비해 절대적인 기능을 갖고 있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굵직한 사건을 거치며 헌재는 이제 일반 국민의 한가운데로 그 정서적 거리를 좁혔다. 기관의 특성상 덜 노출되어질 수밖에 없다고는 하나, 이제 더 이상 구름위의 절대적 권위 이상의 것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다룰 때마다 헌재소장은 판결에 있어 정치적 고려는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정치적 고려라는 것이 꼭 나쁜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정치적 고려라는 것의 이면엔 법적 안정성이라는 고결한 가치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고려가 없을 것이라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법적 안정성 또한 그 본연의 기능을 했다고 보기 힘들게 됐다. 논란은 가중됐고, 합리적이고 명확한 유권해석도 내리지 못했으며, 일반 하급 법원에 그 책임을 떠넘기거나 특정 정치세력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헌법재판관 9명은 대통령 3인, 국회 3인, 대법원장 3인이 지목해 이뤄진다.(헌재소장은 대통령이 임명) 그리고 국회 몫 3명은 여여가 각각 1명씩 지명하고, 여야합의로 1명을 선출토록 하고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점을 감안할 때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6명과 여당 추천 몫 1.5명을 포함해 사실상 7.5명이 정부여당의 입맛대로 선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갈리는 사건에서 여야 합의로 추천된 강일원 재판관과 야당 추천 몫의 김이수 재판관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현 헌재 시스템인 셈이다. 실제 최근 주요사건에서 김이수 재판관만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헌재의 인사결정시스템에서 정권, 혹은 광복이후 반세기 이상을 점유해온 대한민국 수구 기득권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이유라면, 결국 문제는 합리적 민주세력의 무능 탓일까. 아니면 정당한 경쟁을 방해해온 기울어진 운동장 탓일까?

불과 10년, 민주진보세력이 집권한 뒤 맞이한 것은 이미 우리 품안에 들어왔다고 믿었던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그에 따른 문화적 체화가 아닌 지독한 반동이며 퇴행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야금야금 뒤로 돌려지고 있다.

 

커버리지 송종민 시민기자(news@coverag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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