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범죄에 무감각한 우리사회 ‘추태’
마초 문화와 성범죄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낯
  • 정찬대
  • 15.08.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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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는 성범죄에 매우 취약하다. 아니 빈번한 성범죄에 우리사회는 되레 무감각해졌다. 남성들의 성 의식은 빈곤하며, 여성들은 이러한 현상에 익숙해져있다. 선진국의 외피를 두른 듯 보이지만 후진적 행태는 여전하다. 양성평등을 부르짖지만 실상은 남성 우월주의의 마초 문화가 만연해 있고, 자연스런 체화에 자의식이나 윤리적 고민은 무뎌졌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사회 모범이 돼야할 지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편집자 주>

 

지난 19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감이 기간제 여교사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한 번 우리사회를 경악케 했다. 앞서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 교사 5명이 2년 넘게 여학생을 추행하거나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은 터다. 더욱이 학생뿐 아니라 동료 여교사에게도 이 같은 성희롱이 이뤄진 것이 드러나면서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마초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여교사를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교장은 문제를 중재하겠다는 이유로 사건을 마무시키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해당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전에서 ‘교단 성추행’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한 것이다. 특히, 교육부의 ‘성폭력 교원 근절대책’ 발표 하루 만에 관련 사건이 터지면서 강경 방침을 밝힌 교육부의 발표를 무색케 했다. 교감은 그 즉시 직위해제 됐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갑을문화가 고스란히 성문제로

교단, 경찰, 군대 등 상하관계 집단에서 ‘뚜렷’

 

사회 지도층 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고스란히 ‘갑질 문화’가 배어있다. 성관계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지위를 내세워 불이익을 주는 식이다. ‘을’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감내하거나, 싫을 경우 조직을 떠나야 한다.

 

교단뿐만 아니라 경찰, 군대, 직장 내 성희롱 역시 대부분이 이러한 갑질 문화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한 대전 모 초등학교 교감의 경우 임기만료를 앞둔 기간제 교사를 불러내 성관계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추행이 발생했다.

 

지난 14일 A교감은 송별회를 이유로 기간제 교사 B씨를 저녁식사 자리에 불러냈고, 음주 후 모텔까지 이동했다. 기간제 교사 입장에선 교내 ‘갑’인 교감의 지시에 불응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테다. B씨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 관련 사실을 신고했고, 18일 대전경찰청은 A교감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15일 서울 강서경찰서 A경정은 같은 부서 여경에게 수차례에 걸쳐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의 감찰조사를 받고 대기발령 됐다. 앞서 서울 서초경찰서 경감도 부하 여직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해 지난달 중순 대기발령 되는 등 경찰 내 성추문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상하 복종관계가 뚜렷한 군대 내 성범죄는 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최근 북한의 ‘목침지뢰’ 폭발사건이 발생한 해당 부대 A중령은 지난달 31일 예하부대에서 파견 나온 여군 B중위를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A중령은 추행 과정에서 ‘나랑 자면 장기복무에 도움을 주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같은 달 30일 육군 소속 여군 부사관이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국방헬프콜(24시간 군내 성 관련 인권침해 신고 및 피해자 상담 조직)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성추행 피의자가 군사재판의 재판장으로 임명돼 성범죄 관련 재판까지 맡았던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지위가 높고 파워가 있는 사람이 지위가 낮고 힘이 없는 약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성에 대한 착취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사진=SBS뉴스 캡처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보니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 의식이 불러온 ‘성의 착취’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 의식은 그간 성 추문이 끊이지 않은 이유로 지목돼 왔다. 실제 지난 3월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겠다며 도입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보면 남성 우월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잘 말해준다.

 

표준안에 따르면 ‘남자는 돈, 여성은 몸이라는 공식이 통용된 사회 속에서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 ‘성과 관련된 거절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 때 성폭력, 임신, 성병 등 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남성에 대한 지침보다는 대부분 여성의 우유부단함을 꼬집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물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공립고등학교 성추문 피해 여교사는 한 방송에 출연해 “화를 내고 (머리를 때리는 등) 강하게 반발했는데도 곧바로 몸을 부비는 추행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이를 여러 교사들이 지켜봤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여기에 몇몇 교사들은 ‘학교가 엉망인데, 일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제 용서를 하자’는 식으로 회유하기까지 했다. 결국, 오랜 관습처럼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며 무시했던 것이다.

 

권력 중심적인 정치권에서도 성범죄는 끊이지 않는 ‘단골’ 메뉴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출신 심학봉 의원의 성추문 사건이 화제가 됐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온정주의는 또 한 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황진하 사무총장은 “아무 근거 없이 개인의 명예를 짓밟고 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며 모든 화살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성폭행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국회 회기 중에 호텔방에서 여성과 시간을 보낸 의원에 대해 ‘명예훼손’ 운운하며 이를 감싼 것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경찰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서로 합의 하에 관계를 맺었다는데 너무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것 아니냐”며 되레 분통을 터뜨렸다. 황 사무총장이나 당 관계자의 발언은 성 문제에 대한 인식과 안일한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진=SBS뉴스 캡처

일회성 대책에 법망은 허술

빈번한 성범죄에 무뎌진 性공화국

 

최근 교단에 발생한 잇따른 성범죄에 교육부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이는 성범죄 혐의가 인정될 경우 교단에서 영구 퇴출하는 안이 포함돼 있다. 오는 10월 관련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군과 경찰도 계속된 성추문에 서둘러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회성 대책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기에 법망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최근 서울의 한 고등학교 체육교사 A씨는 방과후 체육활동을 지도하던 중 여학생 B양을 성추행했다. 결국 덜미가 잡히면서 A씨는 관할 경찰서에 자수했지만, B양이 피해자 진술을 꺼리는데다 B양의 학부모 역시 “지나간 일을 딸에게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으며, 교사의 처벌도 원치 않는다”고 말해 A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해당 교사는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다.

 

‘심학봉 성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심 의원과 성관계를 맺은 여성은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다가 이후 진술을 번복했다. 금품 등으로 회유 또는 협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번복된 진술에 의해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논란이 일자 ‘심학봉 사건’은 검찰로 이관됐다.

 

국민의 법 감정과 배치되는 판결로 공분을 일으킨 예도 적지 않다.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형사 11부(부장판사 심우용)는 처제를 미성년자 시절부터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형부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인 처제가 추행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적극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즉, 피해자가 충분히 그 상황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제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가해자에 대한 강제추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빈번한 성범죄에 무뎌진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우리사회 만연한 성범죄의 실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커버지리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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