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낙동강변에 물드는 가을, 의성 비봉산에 올라
 
  • 이강
  • 15.10.01 11:55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산세가 마치 봉황이 날갯짓하는 품새를 닮았다고 했다. 그 산을 휘감으며 낙동강 물줄기가 돌아나가고, 산 아랫녘 마을에는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백학이 무리지어 살기도 했다. 깊은 계곡의 명당자리에 앉은 큰 절집은 기도 효험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며 예부터 학승들의 독경 소리가 산천을 깨우곤 했다. 솟구치는 비봉산 정상에 오르니 금황이 날개를 펼친 듯 너른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결친다. 낙동강 젖줄이 휘휘 돌아가는 강변 들녘에 부지런한 농부가 한 폭의 풍경을 채운다. 잠시 머물러 앉아 산사의 풍경 소리에 마음을 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명난 피리 소리, 풍년 든 들판에 닐리리 소리가 드높다.


비봉산(579m)의 산세가 만만치 않으니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 비봉산 등산 코스는 모두 5개다. 지인교에서 출발하는 28번 국도인 덕미리와 삼장고개 마루 중간 지점에도 코스가 있고, 대곡사 일주문 코스, 대곡사 아랫마을인 새주막과 죽림마을 코스도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비슷하다. 다만 대곡사에서 차를 몰고 적조암까지 오른 후 출발하면 등산로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길의 출발점을 낙동강을 경계로 예천과 경계를 이루는 다인면 지인교로 잡는다.

 

△의성의 가을 들녘(사진=이강)

낙동강변의 황금들 따라 의성 비봉산까지


의성군 북서부에 자리한 다인면은 예천 지보리를 마주 보고 앉은 강변마을이다. 다인면은 본래 ‘다기’ 혹은 ‘달기’였으며,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꿀 때 ‘다인(多仁)’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어질고 화합하는 다인면’이라는 이정표 아래 낙동강 줄기를 내려다보는 다인정에서 여정의 채비를 꾸리기 좋다. 정자에 오르니 낙동강 물줄기가 펼쳐지고, 강 아래까지 날개를 펼친 비봉산의 기상이 범상치 않다. 비봉산은 견훤이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산이다.


다인정에서 출발해 28번 국도 아랫길을 따라 걸으니 벌써 들판은 온통 금빛으로 물결친다. 가을볕에 잠시 일손을 놓은 농부의 실루엣이 한가롭다.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들녘의 농부를 바라보다 양서봉정길로 올라선다. 양서2길 이정표를 따라 산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 언저리 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비봉산의 웅장한 산세를 바라보며 걷는 코스로 대략 대곡사까지 약 4.5km 거리다. 좌우로 펼쳐진 너른 들판은 찬란하고도 풍성하다. 예전에는 “다인에서는 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낙동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이는 양서정수장이 다인면 들판의 젖줄이 되어 옥토를 이루게 했다. 물줄기는 인근의 단북면, 안계면까지 흘러들어 안계평야의 젖줄이 된다. 안계평야는 의성 안계면과 단북면, 다인면에 형성된 너른 평야로 경상북도의 3대 평야 중 하나인 대표적 미곡 산지다.


들길을 따라 양서보건진료소 방향으로 200여미터를 걸으면 미륵마을이다. 논둑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들 한복판에 작은 움막 같은 집 한 채가 나타난다.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아주 작은 집이다. 이 집은 사람의 집이 아닌 작은 부처집이다. 마을사람들이 미륵 또는 미륵골 부채집이라고 하는데, 약 한 칸 정도 되는 불당 안에 돌로 만든 부처가 안치되어 있다. 가부좌를 틀고 들어앉은 미륵의 미소가 가을의 들판에 넉넉함을 더한다.


봉황이 날개로 품은 명당의 사찰, 대곡사


비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대략 5개 코스로 나뉜다. 그 중 1박 2일 여정으로는 양서마을의 용곡리 들길을 돌고 낙동강변길을 따라 삼장고개를 넘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새로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비봉산의 빼어난 자태를 감상하며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오른다. 가파른 1차선 아스팔트길을 뒤로 하고 임도가 이어지는 8부 능선쯤에 오르니 발 아래 시야가 탁 트이며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낙동강 물길이 에돌아가는 의성 비봉산(사진=이강)

산 아래 예천군 지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물길이 하얀 비단처럼 휘휘 돌아가고, 사방으로 넓은 평야가 한눈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전망루에 오르자 다인면에서 평생을 살아온 마을 어르신이 비봉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세가 절묘한 비봉산은 일명 자미산이라고도 하고, 고려시대 이전에는 태행산 또는 대항산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또 삼국시대에는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은거했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비봉산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봐야 제대로 보는 것이여. 동쪽에서 바라보면 봉이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고, 남쪽에서 보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서 있는 형국이지. 또 북쪽에서 건너다보면 용기백배한 장군처럼 보이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학가산, 팔공산, 보현산, 갑장산, 노악산, 속리산 등의 산세가 모두 한눈에 들어와. 비봉산은 명산이고, 그 산자리에 앉은 대곡사는 인물을 길러내는 명당의 사찰로 이름이 높지.”

 

△대곡사(사진=이강)

대곡사는 산 중턱 깊은 계곡의 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의성 고운사의 말사인 대곡사는 역사가 오래된 사찰로 인근에서는 기도 효험이 좋기로 이름난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왕사를 지낸 나옹선사와 인도 출신의 지공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대곡사는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자리에 조선 선조와 숙종 때 다시 지은 것이다.


대곡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고요한 사찰이다. 간혹 등산객들과 기도하러 오는 불자들의 모습이 언뜻 보일 뿐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제일 먼저 고색창연한 범종각이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데 다소 험한 산세에서 대지와 일체된 균형미가 돋보인다. 대웅전 앞뜰에 세워진 석탑 역시 범상치가 않다. 이 석탑은 점판암 13개를 한 장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은 청석탑이다. 고려 말 창건 당시에 쌓은 석탑으로 추정되는데, 탑의 이름자만으로도 다소 빛이 바랜 돌탑의 푸르른 색채가 창연하다.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불교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범종각, 다층석탑, 명부전 등 4점의 문화재가 있고, 범종각 입구에 연화문이 양각된 석종형 부도와 석장승 등도 흐뭇하여 천천히 둘러 볼 만하다.


호젓한 절간을 천천히 둘러보고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암자인 적조암을 찾아간다. 예부터 선승이나 학승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암자로 알려져 있다. 적조암에서 홀로 지내는 스님이 길손을 맞이한다. “예전에는 삼월 삼짇날이면 화전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답니다. 대곡사 화전놀이라고도 하고 비봉산 화전놀이라고도 했지요. 사람이 반, 꽃이 반이었으니까요.” 적조암을 지나 정상부로 오른다. 켜켜이 쌓인 퇴적층이 인상적이다. 너른 평지의 정상부에 오르니 비봉산이라 새겨진 정상표석이 자리하고 발아래 최고의 전망이 펼쳐진다. 창공을 치고 오르는 듯한 비봉산의 풍경이 웅장하고 사방 조망이 시원하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