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가을단풍 만끽하며, 둘레둘레 서울을 걷다
 
  • 이강
  • 15.10.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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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은 바람처럼 걷는 산꾼들의 족적을 따라 양지 바른 동리 뒷산 언저리까지 금세 흩뿌려지며 퍼진다. 가을볕의 채도가 짙어지는 때, 가까운 둘레를 걸어보면 참 좋다. 특별히 높은 산을 오를 욕심도 멀리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 또한 참 좋다. 하늘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높이 오른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기도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작은 배낭에 붉게 익은 사과 한 알, 향기 짙은 차 한 모금을 꾸리면 그만이다. 누군가 가을에 걷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짙어진 숲 사이의 길을 걷다보면, 읽기 어려운 두꺼운 책을 읽는 때처럼 생각이 자꾸 깊어진다. 앞마당에 홍시감이 영글고, 도시 한복판에도 가을이 완연하다. 어쩌다가 시간을 놓쳐버리면 내내 서운할 지도 모르니, 지금 가을을 걷자.

 

가을볕이 머물던 자리마다 단풍이 들고, 바람이 돌아간 자리마다 낙엽이 쌓여간다. 바람이 떠도는 즈음에는 가을볕처럼 살아가야지. 아침을 맞이하며 시 한 편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하루 사는 방편이 어렵지는 않을거야. 숲이 앙상하여 지기 전이니 시집 한 권 손에 들고 가을숲을 걸어야지. 한 줄 시 같은 가을볕을 따르니 삶은 긴 여운으로 따스하다.

 

 

△창의문(사진=이강)

 

한양도성 북악성곽을 마주하며 가을 만끽

 

아침볕이 하늘로 오르기 전에 집을 나선다. 서울 도심의 걷기코스로 잘 알려진 한양도성 북삭산 성곽길을 걷는 일정이다. 한양성곽길은 한양도성의 축성 구간인 내사산, 즉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을 모두 한 둘레로 도는 순환코스의 트레킹 코스다. 수려한 산세와 한양성곽의 위용, 주변의 문화유적들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어, 최근 들어 가족단위 여행객과 학생들도 많이 걷는 코스다. 한양성곽길 걷기 코스는 대중교통과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각각의 구간 특성을 살려 걷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난이도에 따라 나무데크와 계단 등의 코스를 잘 정비해 초보자가 걷기에도 큰 무리가 없다.

 

북악산으로 길을 잡는다. 서울 도심에서도 가을을 온전히 느낄 만한 길이 있다는 것이 반갑다. 북악산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주산으로 옛 성곽과 어우러진 울창한 숲이 아름다운 곳이다. 때문에 가을이면 거대한 기암의 절경과 웅장한 산세를 따라 많은 이들이 북악의 숲길을 오른다. 한양도성 북악산 성곽길을 서울의 안둘레로 보면, 밖으로는 북한산 자락길이 서울의 바깥 둘레길로 다시 이어진다. 북악산 성곽길 코스는 ‘서울의 걷기 좋은 산책길’로 잘 알려져 있는 코스다. 총 18.6km의 한양도성 성곽길 중 급경사 구간에 해당되는데, 창의문을 기점으로 백악마루를 넘어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 전망대에서 삼청공원 또는 와룡공원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창의문을 기점으로 삼을 경우, 백악마루 정상까지 1.6km 구간은 급경사 구간이다. 때문에 초보자나 노약자, 산행의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반대편의 와룡공원을 출발점으로 삼아 말바위 전망대를 통과해 숙정문 구간을 지나 창의문으로 내려서는 것이 무난하다.

 

△백악마루 구간(사진=이강)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창의문을 기점으로 잡는다. 부암동주민센터나 자하문터널, 윤동주 문학관 정류장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수월하다. 윤동주 문학관 앞길 횡단보도를 건너 100여 미터 걸으면 창의문이 나타난다. 창의문은 일반적으로 ‘자하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한양도성의 사대문 사이에 만들어진 사소문 중 북소문에 해당한다. 현재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성문 중에서 옛 모습을 가장 온전히 보존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적이다. 창의문 천장의 닭 모양 그림이 있는 것은 성문 밖에 지네가 많아 천적을 그려 넣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악마루에 올라 바라본, 서울의 가을진경

 

창의문을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창의문 탐방안내소에 오르니, 휴식공간과 화장실 등 편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창의문 안내소는 북악산 구간의 통행을 위한 안내소인데, 북악 구간의 산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야만 한다. 북악산 구간 중 창의문에서 말바위 안내소까지는 탐방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산행을 마칠 때까지 패찰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참고로 매주 월요일은 안내소가 휴관해 산행이 불가하다.

 

안내소를 지나니 한양도성 성곽길 중 가장 가파른 코스인 백악마루 구간이 시작된다. 안내소를 지나 오르자 돌고래 쉼터가 나타나고, 곧바로 백악마루, 정상까지는 가파른 경사구간이 시작된다. 약 1.6km의 구간으로 나무데크와 급경사의 계단이 이어지는 코스다. 계단길은 거의 40도 남짓의 경사도를 이루는데,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때 쯤이면 백악마루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에는 해발 342미터의 백악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백악은 북악의 옛 이름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서울의 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백악마루는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내사산 중 가장 높은 산이다. 발 아래로 서울의 도심 광화문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한양도성 성곽의 위용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다. 우측으로 한양성곽 인왕산 구간의 성곽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정상에서는 등반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숙정문 하산 송림숲 구간(사진=이강)

 

이제 숙정문 방향으로 내려선다. 하산 구간에는 1.21 사태 소나무, 경복궁을 조망하기 좋은 청운대가 자리하고 있고, 곡장을 지나 성곽 안길을 따라 내려서면 울창한 송림숲 아래 숙정문에 이르게 된다. 이 구간은 전체 한양도성의 성곽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는 구간이다. 청운대를 지나 성 밖 구간의 내리막 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높다란 성곽의 외경이 펼쳐진다. 장엄하게 펼쳐진 성곽의 건축미가 웅장하다. 곡장을 돌면 다시 성곽 안길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길이 폭이 줄어들지만 조금 내려서면 울창한 송림 숲 아래 숙정문이 자리하고 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 4대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문이다. 문루에 오르니 성곽의 바깥으로 멀리 북악산 팔각정이 보이고 성북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숙정문에서 하산길은 크게 두 길이다. 바로 앞의 팔각정까지 올라 서울둘레길 북한산 구간인 평창마을길을따라 북한산생태공원까지 계속 걸을 수 있고, 말바위 안내소 방향을 지나 와룡공원이나 성북동 일대로 하산할 수도 있다. 하산하려면 말바위 안내소에서 패찰을 반납하고, 말바위전망대로 내려서면 된다. 말바위전망대에서는 나무데크 계단을 내려오면 삼청공원 방향과 와룡공원 방향의 길이 이어진다. 삼청공원은 산책로와 놀이터,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북촌으로 내려서는 길이기도 하다. 잠시 쉬며, 여정의 피로를 풀기에 적당하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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