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가을볕 머무는 영주 부석사에서의 하루
 
  • 이강
  • 15.11.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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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마당을 가로지르는 노스님이 바람처럼 걷는다. 가을볕이 머무는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노니는 바람의 모습은 드셈 없이 편안하다. 큰 법당에서 마른 기침소리는 아침 예불이 끝나다는 기척이다. 그 사이 하늘과 맞닿은 태백산맥의 줄기 너머로 붉은 햇귀가 차오른다. 산사에서 맞이하는 일출. 새벽 운무가 서서히 걷어지는 찰나, 밤새 어둠 속에서 절집을 지키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부석사라는 이름의 어원인 부석(浮石)에는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이어져 내려온다. 가을 부석사, 그 절집의 여백을 채우는 옛 이야기를 찾아 오른다. 가을볕은 머무는 절집 마당이 참 편안하다.

 

△부석사(사진=이강)

 

영주 부석사는 가을이면 꼭 찾아가고 싶은 절집이다. 극락의 세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절집은 가을볕이 하루 종일 머무는데, 사람을 끌어안는 품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 숲길은 마치 커다란 꽃나무처럼 반짝거린다. 가을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풍경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되는데, 한번이라도 이 절집에 오른 이들은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으레 다시 찾는다. 일주문을 지나 범종루에 이르자 눈부신 햇살이 안양루를 채운다. 황금부처가 가부좌를 틀어 앉는 순간을 마주한다.

 

태백산 부석사에 온종일 앉아서

 

태백산 부석사(太白山 浮石寺)라고 쓰여진 일주문을 지난다. 부석사는 아름다운 절집의 풍경과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으로 일반에게 많이 알려진 경북 영주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일주문을 통과해 극락의 세계인 무량수전(보물 제18호)에 다다르기까지 아홉 단의 석축과 108개의 석계단을 밟아 올라야 한다. 봄여름을 지나며 탕진한 시간과 그간의 번뇌가 한 걸음 한 걸음의 무게로 다가온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고, 마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을 찾아 헤맨 끝에 태백산의 한 줄기인 이곳 봉황산(해발 819m)기슭에 터를 잡아 세운 고찰이다. 고려 초기에 손실되었다가, 고려 정종 7년(1041년)에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량수전(사진=이강)

 

부석사의 자랑은 단연 무량수전이다. 목조건물 중 무량수전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조잡한 구석 없이 당당하면서도 겸손함이 느껴진다. 배흘림 양식의 기둥은 아래쪽 부분을 불룩하게 만들어 시각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더 웅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처마선은 곡선을 그리면서 날개를 활짝 펴는 듯하다.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다가, 최근 안동의 봉정사에 그 이름을 내주었다.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인 안양루에 오르자 바로 무량수전이 점잖이 들어 앉아있다. 너른 앞마당과 균형미가 돋보이는 무량수전의 건축미, 또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태백산 줄기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멀찍한 걸음으로 무량수전을 바라보는 한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한국의 전형적인 건축미가 아마도 그에게는 매우 신비로운 듯하다. 가을이면 늘 부석사를 찾는다는 그는 벌써 다섯 번째 부석사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 멀리 태백산 줄기를 바라보는 그는 하루종일 머무르며 해질 무렵에서야 산을 내려간다고 했다. 담담한 듯 보이는 절집 안마당, 채색이 바래어진 무량수전에서 간절함으로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사이 무량수전 안쪽에 비껴 앉은 금빛 부처상으로 아침햇살이 따스하게 드리운다. 부석사의 비어진 여백을 채우는 것은 오래도록 이루지 못한 선묘낭자의 끝나지 않은 사랑은 아닐까? 누군가를 위한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모습에 선묘낭자의 편안한 모습이 겹친다. 기도를 올리던 이들의 얼굴이 평온이 깃드는 순간이다. 소원과 기도의 마음이다.

 

가을볕이 머무는 넉넉한 절집 마당

 

무량수전 왼편에 위치한 부석 앞에 한 무리의 가족들이 앉았다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며 집채만한 바위를 이리저리 살핀다. 부석이 정말 떠있는가를 살피는 어린 자녀의 모습을 보고 함께 온 아빠와 엄마가 눈빛으로 호응을 한다. 부석사의 이름이 바로 이 뜬 돌, 부석에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여러 번 바위 밑으로 실을 통과시키는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이리저리 바위를 살피던 아이가 '믿거나 말거나‘하며 아빠를 바라보더니 연신 부석이란 글씨 앞에서 사진을 찍어댄다.

 

△부석(사진=이강)

 

부석은 '선묘낭자'의 넋이 변한 것이라 짐작하는데, 창건 당시에 공중에 세 번이나 떠올랐다고 하는 설화가 깃든 바위다. 커다란 자연석 서너 개가 서로 뒤엉켜진 듯한 부석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신라의 승려인 의상대사와 중국여인 선묘낭자의 사랑의 이야기가 서려있다. 선묘는 부석사를 세운 의상과 애절한 사랑을 나눈 여인이다. 선묘낭자는 의상의 중국유학시절 그를 흠모하여, 한 마리의 용이 되어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큰 힘을 보탠다. 용이 된 선묘낭자가 거대한 돌을 띄워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나쁜 무리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곳곳에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유적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용으로 화한 선묘룡이라 일컫는 석룡이 절이 완성되자 도량을 지키기 위해 법당을 떠받치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부석사의 너그러운 품세와 거드름이 없는 편안함이 오직 희생으로 사랑을 구현한 선묘낭자의 품일 것이라고 해석되어지기도 한다.

 

△부석사 일출(사진=이강)

 

부석사에는 이 외에도 흙으로 빚은 소조여래좌상, 석등, 조사당과 조사당의 벽화, 당간지주와 삼층석탑 등 국보와 보물이 많다. 창건할 때 만들었다는 통일신라의 석등은 우리 석등 가운데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에 든다. 석등을 백 번만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있어 사월 초파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달밤에 이 석등을 돌며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부석사는 무량수전 앞마당, 삼층석탑 주변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가히 장관이다. 해질 무렵, 겹겹이 늘어선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일몰은 하늘자락에 긴 여운으로 오랜 잔상을 남긴다. 마치 구름 위에 앉은 듯한 안양루에 기대어 서서 발 아래를 내려보니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양루에서 바라본 태백산 자락은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커다란 한 마리의 용이 절집을 감싸 안고 있는 품세다. 어쩌면 부석사를 세울 때 무량수전를 떠받친 석룡이 천년의 세월동안 태백의 줄기가 되어 부석사를 지켜온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질 무렵, 담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니 짙은 구름 너머로 여의주를 배어문 한 마리의 용이 슬며시 보이는 듯하다. 그 절집의 여백에서 이 땅에 살다간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숨결이 느껴진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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