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물안개가 그려내는 두물머리의 가을서정
 
  • 이강
  • 15.11.3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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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그려내는 서정풍경을 마주하러 연례행사처럼 산사에 오른다. 마침내 가을이 떠나고 겨울로 드는 무렵이면, 그 물가를 찾아 삶의 수평을 묻곤 한다.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오메, 그 별리(別離)의 감정이 깊어만 간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은 순행적이어서 섭섭함이 덜 하지만,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깊어지는 것은 역행적이어서 그 별리감이 유난하다. 저물어 가는 가을빛과 수묵화의 진한 먹 냄새가 풍기는 두물머리의 가을서정. 짙은 운무에 가려진 두물머리의 새벽은 고요하다. 청평호에서 피어나는 새벽 운무가 운길산을 자욱하게 뒤덮고 있다가, 아침 바람에 쓸려 강가로 내려앉는다. 새벽이 깨어나는 순간을 마주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길이 하나로 합일되어 지는 순간의 고요한 수평을 카메라에 담는다.
 
새벽 물안개가 산을 내려와 밤새 얼어붙은 두물머리의 아침을 깨운다. 이 땅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저기 굽이치는 두 줄기의 물줄기다. 천릿길을 달려온 두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비로소 하나호 합일되는 순간은 고요하다. 고요한 것은 대등하여 지는 것이다. 고요함은 온전히 일체를 이룬 경우에만 가능하다. 한편으로 치우침이 없는 힘의 균형이 일치되는 지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온전한 수평이 가능하여 진다.

 

△수종사에서 바라본 일출(사진=이강)

 

한강 물길 굽어보는 운길산 수종사

 
남양주시 운길산 중허리에 들어앉은 수종사(水鐘寺)에 오른다. 청평 방향 45번 국도에서 벗어나 운길산 방향 중턱에 이르면 수종사로 오르는 초입이다. 걸음을 서둘렀으나 산사의 시간으로 보면, 그리 아득한 새벽도 못된다. 아침예불의 독경소리는 햇귀가 산중턱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기척이다. 일주문을 지나 흙길을 따라 오르니 절벽 위에 들어앉은 수종사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산사의 풍경은 짙은 수묵담채에 가깝다.
 
수종사는 한강 제1경인 두물머리를 조망할 수 있어 이맘 때면 사진애호가들이 제일의 출사지로 손꼽는 곳이다. 절집 대웅전 뜨락에는 이미 한 무리의 사진애호가들이 아침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이면, 수면으로 피어오르는 신비한 물안개를 마주할 수 있는데, 특히 물안개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일출 전후의 시간대에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종사에서 바라본 새벽 물안개(사진=이강)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기, 서로 다른 자연의 기운이 서로 힘을 겨루는 순간의 포착이다. 낮과 밤이 교차하며 상승하는 기운과 쇠약하는 기운이 서로 힘을 교차하는 새벽 시간대의 산사는 오로지 정적감만이 맴돈다. 카메라를 든 무리들이 수종사 제일의 사진 포인트인 두물머리의 고요를 내려다보고 있다.잔잔한 물결 위로 피어오르는 운무는 봄의 물안개와는 그 질감이 다르다. 봄의 물안개가 대지의 깨어남으로 하늘로 피어오르는 상승의 기운이라면, 가을의 운무는 땅으로 내려서는 기운으로 가슴으로 짙게 스미는 이별감이 짙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 속으로의 별리, 이미 지나간 시간의 상념들이 흩어지고 소멸되어 진다. 사람들은 두 물줄기의 합일을 기다리며 햇귀가 밝아오는 순간까지 한 치의 미동이 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두 물줄기의 합일과 낮과 밤의 교차가 이루어지는 순간의 기다림이다. 치우침이 없는 균형이 온전하여 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함이다. 호흡을 멈추고 고요한 수평의 찰나를 카메라에 담는 이들의 모습이 엄숙하다. 아침 햇귀가 밝아오는 순간, 균형은 이내 깨어지고 말 것이다.

 
두 물줄기가 하나되는 두물머리의 고요
 
아침 햇귀가 산중턱을 넘어선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카메라를 접고 절집 대웅전 앞에 자리한 찻집 ‘삼정헌’에 오른다. 조선 세조가 세웠다는 수종사는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다산이 스물한 살 때 진사과에 합격하고 자축연을 벌인 곳도 바로 수종사이고, 생을 마감한 곳 역시 두물머리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가 그를 찾을 때면 함께 수종사에 머물며 차를 마셨다고 전해지는 데 바로 이곳 삼정헌이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수종사의 석간수로 우려낸 차맛은 으뜸인데, 현재도 그 차의 향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000년 봄부터 운영되는 무료찻집으로 삼정헌은 ‘시(詩)-선(禪)-차(茶)’가 하나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녹차와 다구가 모두 갖춰져 있어 누구나 다실에 들러 따뜻한 차를 음미할 수 있다. 차향에 몸을 녹이고 두물머리에 물안개가 내려앉을 즈음 산 아래로 발길을 돌린다.

 

△운길산 수종사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사진=이강)

 

두물머리(兩水里)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兩水里’를 쓰는데, 이곳은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옛날엔 두물머리를 두머리라 불이었는데, 서울로 들어가기 전 하루를 머물러 가는 쉼터였다. 이곳의 나루터가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포구였던 탓이다. 그러다가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나룻터는 쇠퇴하기 시작해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아예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은 지금도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새벽에 피어오르는 두물머리의 물안개가 사람의 발길을 불러들이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두물머리를 찾는다. 사람들은 두물머리의 백미인 해 뜨기 직전의 남한강 풍경과 황포돛배를 카메라에 담기에 분주하다. 두물머리에는 또 다른 볼거리는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의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느티나무는 높이 30m, 둘레 8m로 ‘도당할매’라 불린다. 한때 바로 곁에 ‘도당할배’라는 느티나무가 자리해 한 쌍이었으나, 홍수 때 물에 잠겨 베어진 후 이제는 혼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도당할매 느티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아오고 있다. 요즘도 해마다 음력 9월 2일이면 이 나무에 제를 올리는 ‘도당제’가 열리는데, 그 덕인지 몰라도 이른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함께 두물머리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두물머리 산책로를 따라 세미원까지(사진=이강)

 

해가 중천에 가까워 오니 두물머리 산책로를 다라 세미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세미원은 물과 꽃의 정원으로 잘 알려진 수생식물원이다. 실내외 공간에 연꽃을 비롯해 50여가지의 수생식물이 아름답게 조경되어 있어 양평을 찾은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물 위에 떠오른 연꽃과 수련, 창포 등 수생식물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세미원이란 이름에는 장자의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물을 보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가꾼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간이 족하면, 남한강변에 자리한 다산 선생의 생가터와 다산유적지까지 둘러보는 것도 좋다. 남양주시 능내리에 위치하며, 다산 선생의 생가 여유당과 다산 선생의 묘, 다산문화관과 다산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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