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생활
[답사] 수만 송이의 꽃잎으로 흩어지는 섬진강의 봄
 
  • 이강
  • 16.08.29 15:11
  • facebook twitter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
  • 글자크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
  • print
  • |
  • list
  • |
  • copy
섬진강의 봄은 길다. 더디게 더디게 늦장을 피우던 봄이 마침내 광양 매화마을을 시작으로 산천에 꽃을 뿌린다. 나지막한 돌담에 어느덧 산수유가 피고 지면, 절집 오르는 길목에도 벚꽃이 바람으로 흩어질 것이다. 이제 봄꽃들은 섬진강을 따라 봄처녀 오색댕기를 풀듯 색색으로 퍼져나간다. 봄기운을 기웃거리던 주먹만한 참게가 강바닥을 토닥토닥 거슬러 오르고, 부지런한 재첩잡이 강어미가 새하얀 모래밭에 쪼그리고 앉아 도란도란 봄살림을 꾸린다. 꽃과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지고, 그 강줄기에 점점이 사람들까지 북적대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 봄은 가령 수만 송이의 꽃잎처럼 자잘거리다 흩어질 것이다.
 
광양 매화마을. 사진/이강
 
강으로 꽃이 흐른다. 봄을 맞은 섬진강 자락이 말 그대로 ‘시절 좋다’. 치마 끝을 휘어 감는 꽃바람에 수줍은 강변처녀의 낯빛이 발그레하다. 3월 매화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섬진강 하류는 매화, 산수유, 벚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 꽃잔치를 펼친다. 섬진강 물줄기따라 꽃이 피니 전남 구례, 광양, 경남 하동땅의 강변마을들은 한통속으로 동거동숙하며 자잘자잘 꽃잔치를 연다. 강 줄기따라 꽃향이 흐르니 봄이 흩어질 때까지 시간을 탕진해도 그만이다.
 
섬진강변에 봄볕이 발그레하다
 
섬진강 하류 서쪽, 매화꽃이 흐드러지면 비로소 봄이다.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의 섬진강을 따라 조성된 41.1㎞의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따라 걸으면 하얗게 망울을 터뜨리는 매화가 향으로 먼저 반기고 눈에 들어온다. 광양의 다압면 매화마을을 기점으로 섬진강변을 따라 걷는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섬진교를 지나 조금 걸으면 10만그루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이다. 마을 들머리에는 1917년에 처음 심어진 매화나무가 있으니, 꼭 100년이 된 셈이다. 매화마을은 가장 먼저 매화꽃이 피는 마을로, 강변을 따라 산기슭에 들어앉은 마을이다. 강변을 시작으로 10만평의 산기슭에 매화밭이 너르게 펼쳐져 있다. 매해 3월초부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해 4월초까지가 절정으로 자줏빛 붉은 홍매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청매, 백매가 뒤를 이어 꽃망울을 터트린다. 사람들은 매화의 어여쁜 자태에 반하고 그윽한 향에 취하고 만다. 강을 건너면 섬진강을 따라 나란히 누워있는 국도 19호선이다. 꽃향기를 따라 구례 쪽을 길을 잡으면 산수유 마을에 닿을 수 있다.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은 산동면 일대를 일컫는데, 상위마을에서 상관마을, 지리산온천관광단지가 있는 대평리, 위안리, 지리산 둘레길과 연결되는 계천리까지로 온통 산수유꽃밭이다. 때문에 매년 봄이면 상춘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마을길을 걸으니 계곡과 돌담을 타고 다시 꽃의 향연이 이어진다. 마을은 노란 산수유 꽃물결이 지리산 자락을 휘감아 돌며 그림 같은 한 폭의 동양화를 수놓고 지나간다. 한줄기 소소한 봄바람이 휘돌아나면 양철 지붕집 돌담 어귀에도 노랗게 물이든 산수유꽃잎이 자잘거린다. 병아리 꽃발톱같다는 산수유는 4월초까지 꽃망울을 피운다.
 
사진/이강
 
산수유 꽃은 두 번 피는데, 꽃말은 ‘영원불변’이다. 3월 중순에 겉꽃잎이 피고 4월 초에 속꽃잎인 수술이 다시 만개한다. 이제 구례에서 하동에 이르는 섬진강변 19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강풍경과 어우러진 절정의 봄볕을 즐긴다. 강변길을 따르니 햇살을 받으며 흐르는 섬진강의 물빛이 투명하고 따스하다. 투명한 물빛에 햇살이 간지럽고, 졸고 있는 백로가 한가롭다. 다리품을 쉴 겸 강둑에 주저앉으면 저 멀리 하동포구 팔십리 물결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섬진강 빛깔을 닮은 삶의 풍경들
 
잠시 또 걸으면 외줄잡이 뗏목과 어우러진 강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은 맑고 물줄기를 따라 눈부신 하얀 강모래가 햇살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품이다. 섬진강은 여자, 아니 갯어미의 강이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모래밭은 온 몸을 그대로 내어 놓고 사람을 부른다. 너른 품으로 펼쳐져 있는 모래톱은 순백에 가깝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가까운 강마을 어미들이 몸을 물에 반쯤 담근 채 모래톱에서 재첩을 캔다. 어미들은 재첩을 ‘갱조개’라 부르는데, 강조개의 사투리다. 긴 막대 끝에 부챗살 모양의 긁개가 달린 ‘거랭이’란 도구로 강바닥에 깊이 박은 후, 훑어가며 재첩을 잡는다. 재첩을 캐어내는 강어미들의 모습이 아련한 봄날의 풍광과 어우러진다. 강은 온 몸을 내어 놓고, 사람들은 또 그렇게 강을 쓰다듬는다. 풍경 안에는 삶이 있고, 그 삶은 풍경을 닮아간다. 문득, 푸르스름한 재첩국의 맑은 국물이 마치 물안개를 머금은 섬진강의 빛깔을 그대로 닮은 것인가란 생각이 든다.
 
섬진강의 풍경. 주민들이 줄배로 강을 건너고 있다. 사진/이강
 
잠시 머무르다 19번 국도를 벗어나 하동 쌍계사 방면으로 길을 잡아 평사리까지의 돌아볼 작정이다. 4월 초순이면 망울진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시원스런 악양 벌판에 지천으로 봄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십리벚꽃 길은 ‘2013~2014년 한국관광 100선’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100선 최우수 길’로 선정됐으며 또한 ‘대한민국 구석구석 100선’, ‘지역베스트 그곳 휴가명소’로도 선정되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벚꽃길이다. 하동 초입에서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터로 이어지는 19번 국도 27㎞ 구간은 눈부신 벚꽃이 터널을 이루며 환상적인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들어가는 6㎞ 화개동 계곡은 수령 50~80년 벚나무 1200여그루가 선경에 들어온 듯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특히 쌍계사로 들어가는 십리 벚꽃길을 따라 오르면 길을 따라 다원이 늘어서 있고, 아낙들이 찻잎을 따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야생 녹차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녹차를 재배한 차 시배지로 알려진 쌍계사 주변으로 차나무가 흔하다. 특히 맛과 향이 각별한데, 화개 골짜기가 차가 자라기에는 마치 맞기 때문이었다. 맑은 차로 목을 축인 후 천천히 화개장터를 둘러볼 셈이다. 쌍계사 들머리에 섬진강의 본류와 화개천이 마주치는 곳에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다.  ‘있어야 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구례를 있는 장터다. 화개장터는 조선시대 때 전국 5대 장으로 꼽혔던 곳으로 남도에서 가장 큰 장이었다. 2014년 11월 화재로 영업을 중단했던 화개장터를 지난 해 리모델링하여 다시 장을 열었다. 화개장터에서 벚꽃이 만개하는 4월 1~3일 사흘간 제21회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열린다. 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에 5일장이 선다.
 
잠시 돌아보고 조금 내려오니 저만치 강 너머 언덕 위에 정자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하동군 악양면이다. 예전에는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었던 풍치가 좋은 정자, 악양루가 점잖은 풍채로 한가롭다. 한동안 햇살을 받으며 다시 걷는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저만치 산자락 아래 평사리 마을이 까마득히 보인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로, 들판 뒤쪽으로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쪽으로 섬진강이 흐른다. 평사리는 지리산 남서면 일대에서 가장 넓은 들판을 간직한 곳으로 초가지붕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고 한다. 예전 어른들은 평사리를 ‘무디미 들판’이라고 불렀다 한다. 무디미는 경상도 방언으로 ‘아주 못쓴다’는 뜻이다. 평사리 들판으로 섬진강물이 자주 넘쳤기 때문에 쓸모가 많지 않았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섬진강은 온통 은빛으로 눈이 부시고 넓고 고운 백사장 정취가 사뭇 평화롭다. 평사리의 들판을 내려보다 길게 드러누운 섬진강 둑을 따라 천천히 내려선다. 마실을 나서는 늙은 할아비의 어깨에도 꽃잎이 흩뿌려지는 봄. 햇살에 물든 수백 수천만송이의 꽃들이 모두 흩어지기 전에 섬진강으로 봄마실을 떠나보자.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