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너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라진 죄의식
부동산 탈세는 ‘입각세’…“누가 법을 지키겠냐”
  • 김영택 기자
  • 15.07.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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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시절 우겸이 빈손으로 황실로 가려 하자, 이를 보다 못한 주위에서 “금은보화가 안 된다면 지방 특산물이라도 들고 권문세가에게 바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우겸은 “두 소매에 맑은 바람만 넣고 천자를 알현해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면하리라”고 거절했다. 이후 ‘청풍양수(靑風兩袖)’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뜻하게 됐다.

 

2000년 국무총리와 행정 각 부의 장관 등 고위 공직자 후보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가장 많이 제기된 논란은 ‘병역 면제’와 ‘탈세’, ‘위장전입’이었다. 특히 다운계약서를 통한 부동산 탈세는 청문회 때마다 어김없이 제기되며 사과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관행이 됐다. 고위 공직자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부였다.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친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무려 15명의 공직 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탈세 등으로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이중 10명은 탈세 의혹 속에서도 청문회를 통과하며 법치를 비웃었다.

 

최근 황교안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소재 아파트의 다운계약서 작성 및 취·등록세 탈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곤혹을 치러야만 했고, 전임자였던 이완구 전 총리 역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의혹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13년 1월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부동산 편법 증여 문제로,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는 장인으로부터 장남이 증여받은 경북 예천군 임야를 재산신고에서 누락해 사퇴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부동산 투기, 미성년 자녀 예금 증여세 납부 회피 의혹을 받았고, 더욱이 이 같은 탈세를 잡아내야 할 김덕중 전 국세청장도 탈·절세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 2005년 6억원대에 매입한 경기 안양의 아파트를 3억여원으로 축소 신고해 취·등록세를 덜 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탈세는 ‘입각세’, ‘장관 통과세’로 비하되며 현 정부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해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다운계약서 등 부동산 탈세로 이득을 챙긴 고위 공직자들은 훨씬 많을 것”이라면서 “일반 시민들로서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총리·장관 등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 10명 중 9명이 부동산 탈세를 하는데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며 “가진 자들일수록 더하다”고 말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사회 전반의 죄의식도 사라졌다. 준법 대신 불법이, 청렴 대신 이해가 우선하면서 청풍양수는 책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고사가 됐다.

 

   자료/뉴스토마토

 

 

 

원문: 뉴스토마토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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